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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r 29. 2023

비교 없이 오롯한 글쓰기 자세

대학을 졸업한 지 25년이 된다. 재상봉 행사 관련하여 책을 만들게 되고, 각 과별로 간단히 소개하는 글과 사진이 필요한 모양이다. 사진이야 각자 가진 것을 풀어놓으면 되는데, 소개 글은 누군가 공수를 들여야 하는 일이 되었다. 동기들이 대뜸 ‘나 작가’가 담당하라 하였다. 굳이 거절할 일도 아니길래 받아들였다. 긴 글도 아니거니와 간단하게 몇 줄 쓰면 되는 일이지만 실은 짧은 글 짓기가 더 어렵다. 아예 길게 쓰면 이런 소리, 저런 얘기 풀어내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하루 고민 끝에 한 단락 써서 단톡방에 공유하니 칭찬 일색이다. 필력이 좋다, 작가는 다르다 하는 말을 들으니 그들에겐 그렇게 보이나 싶기도 하다.


요즘 문학 평론가이자 작가인 신형철 님이 쓴 <인생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있다. 제목이 거창하여 선뜻 손이 내키지는 않았으나 독자 평을 보고 용기 내어 골랐다. 책은 동서양의 다양한 시를 읽고 작가가 해석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간된 다른 작가들의 책이나 글을 보노라면, 과연 작가는 작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아주 간혹 이 정도는… 하는 건방진 마음가짐을 갖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신형철 작가의 이 책은 몇 장 읽지도 않았건만 난 쉽게 전자의 결론에 이르렀다. 필력이란 이런 글에 붙이는 것이 맞지, 이런 생각. 그리곤 대학 동기들 덕분에 잠시나마 빠져 보았던 어설픈 작가로서의 건방짐을 반성하게 되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조금 익숙해질라치면, 나를 좌절시키는 진짜 필력 좋은 사람들의 글이 꼭 이렇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비교하며 살지 말라 하건만 그걸 완전히 멈추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 안타깝지만 그렇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말은 비교의 상대가 있기에 유효한 표현이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남과 비교하며 살면 사실 피곤한 것은 당사자이다. 물론 비교가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변화와 자극이 있기에 누군가는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하고 더 많은 것을 이루려 한다. 어쩌면 그것이 호기심과 함께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떤 일이-운동이든, 성적이든, 글쓰기든-본질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일지라도 성적이나 결과물이 남보다 더 좋으면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그러나 비교의 선한 작용 중 하나는, 세상엔 잘난 사람 많으니 늘 겸손하게 굴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는 점이다. 대학 동기들 눈엔 내 글이 괜찮게 느껴질지언정, 고수들 앞에서는 내 글이 내놓기에 쑥스럽고 초라하고 부끄러운 결과물일지 모른다.


나의 아이는 시험을 보고 오면 매번 자기 보다 못 본 사람이 있음을 강조한다. 아주 못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지나치게 당당한 것이 좀..). 자신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은 아이가 있지만 그건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부모 된 입장에서 보건대, 목표와 비교 상대를 높게 잡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부려도 보고, 일부러 자극을 줘도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긴 당사자 입장에선 꼴찌만 아니면 어쨌든 괜찮다는 생각이 더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을 유도한다는 것이 맞긴 하다. 비교에 닳고 닳은 어른의 관점이 틀릴 수 있다. 비슷한 생각으로 필력 좋은 사람을 경외하고 존중하면 될 일이고, 굳이 비교하여 마음 상할 이유를 부러 찾지는 않아도 된다. 글이야 써지는 대로 쓰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해 보며 내 아이처럼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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