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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비바람 속에서.

by nay

(지난 7월 22일에 쓴 글입니다)


아내와 보신각을 다녀왔다.

누군가의 죽음이 던지는 메시지를 허투루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솔직히 나 자신의 일은 아니었기에, 더운 날씨와 뜨거운 도로를 탓하며 가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언제든지 내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현상이다. 그 분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동료의 안타까운 사건에 분노하고 공감하는 배우자를 돕기 위해 함께 길을 나섰다. 검은색 옷을 함께 차려입고.


많은 사람이 함께 했다. 사람들의 얼굴은 선했다. 젊은 교사들이 많아서 아내는 '내가 여기서 나이가 꽤 있는 사람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여기에 정치적 이념의 옷을 입히는 사고, 이권 투쟁으로 생각하는 사고, 가해와 피해, 학생과 교사의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대신 우리 사회 깊숙하게 파고든 모종의 특권 의식과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 천박한 인식의 대표적인 사례로 생각했다. 이런저런 법적 조항과 규제로 강제하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다. 슬픈 우리 사회의 단면이,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적 약자가 되어 버린 교사와 학교라는 대상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모양새이다.


집회 도중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는 구급차를 보았다. 우리 앞에 보이는 전광판에는 끊임없이 넷플릭스 광고, 은행 광고가 나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신호 대기로 사거리 앞에 멈춘 시티투어 버스의 2층 승객들은 신기한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로 참가자들의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누군가의 절박한 외침, 살 수 있게 도와달라는 목소리는 도시의 소음과 어지로움 속에서 묻히고, 들리지 않고, 혹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런 상황이 참 아이러니했다. 다양한 가치와 생각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적절한 길을 찾는 건 혼란스러워 보였다.


마른 바닥에 앉아 있던 우리를 향해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학생 아들이 곧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기에 또다시 긴 여정을 거쳐 서울을 빠져나왔다. 그녀와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아이에게 밥을 챙겨 주는 상황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격하게 느끼게 해 준다. 교사들의 외침이 그저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기를, 젊은 나이에 사라져 간 교사들의 아픔이 허무하게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자기가 중요한 만큼 그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바람을 바라는 것이 사치스러운 생각이란 결론에, 비통하고 아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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