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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Oct 05. 2023

일에 대한 글쓰기가 줄어드는 까닭은.

요즘 일에 대한 글을 쓰는 횟수가 줄었다. 글을 써야겠다 싶은 에피소드가 줄어서일까? 그동안 회사 생활을 통해 얻은 교훈,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주제, 일하면서 깨달은 삶의 의미 등을 많이 쓴 것이 사실이다. 언제나 글감은 나를 둘러싼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고, 회사 생활은 여전히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니 글쓰기의 주제가 줄어들 물리적 이유는 많지 않다. 


결국 이유는 내 마음에 있다. 


일과 삶은 일상 그 자체이다. 그리고 글은 사유의 결과물이다. 즉 일에 대해 쓴다는 건, 일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쏟아내놓는 작업이다. 일을 그만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에 대한’ 글이 나오지 않는 건 느끼고 생각하는 행위가 줄었음을 뜻한다. 내 글은 거의 ‘이게 맞아?!’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했었다. 책을 읽고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현장에서 적용했는데 현실과 이론은 달라서 난감했던 것, 주어지는 업무의 부당함에 대한 생각, 더 나은 조직문화의 가능성, 부서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고민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걸 가만히 글이라는 매체로 풀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적절한 답을 얻었다. 힐링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일과 글쓰기는 나를 성장시켜주었다.


‘이게 맞는 거야?’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완벽한 상황은 없다. 설사 이상적인 일터에 있다고 해도 그 질문이 사라질 가능성 역시 없다. 언제나 현실은 녹록지 않은 법이니까. 그저 질문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어딘가 달라져 버렸다. 어지간한 일에 크게 분노하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너그러워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현실에 적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제도 다른 부서 사람의 메일을 본 뒤 까칠한 답변을 쓸까 말까 고민했다. 그의 의견에 대한 내 생각이 치고 올라왔기에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걸 본문의 앞에 둘까 뒤에 ps.라고 써서 붙일까 몇 번을 생각했다. 그렇게 답 메일을 완성했지만 그저 '알겠다'는 말만 남긴 뒤 나머지는 그냥 지워 버렸다. 내가 참고 말지, 이런 생각이 들다 보니 맘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시작하는 글감의 불씨가 쉽게 죽어 버린 셈이다.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이미 했던 얘기의 반복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매번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돌아보면 기존의 사건이나 경험과 유사하거나 작은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다시 글로 끄집어내어 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동어반복을 싫어하는 개인적 성격도 있다. 링크드인이나 브런치에서 직업에 대한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을 보면서 가끔 좌절감도 느낀다. 아, 이걸 이렇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이구나, 나는 왜 그게 안되지? 그런 상황들이 조금 반복되면서 ‘일’에 대한 글을 쓰는데 의기소침해졌다. 어쩌면 내가 겪게 되는 상황이 이젠 루틴처럼 되어 버린 까닭이다. 글감이 떨어진다는 건 어쩌면 변화와 도전이 사라져버린, 재미 없는 일상이다. 


마지막은, 이제는 내가 쓰는 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해서이다. 회사 내에 이 브런치 공간을 아는 사람들이 늘었다. 불특정 하면서도 특정할 수 있는 아이러니 덕분에 날이 서있는 날카로움을 내어 놓기 어렵다. 의도된 날 것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나는 너무 괜찮은 사람이라는 미화된 자아로 표현될 우려와, 내 관점만으로 하나의 사건을 해석해 내는 것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 가지 일들이 생각나지만 어쩌면 회사를 그만두기 전엔 그 어디에도 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오늘은 꼭 이런 내 마음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용기를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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