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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Dec 18. 2023

외로움이 글을 부를 때.

얼마 전 폴인이라는 사이트에서 윤종신과 송길영의 대화를 보았다. 핵개인의 시대에 대한 주제였는데, 나를 사로잡은 건 윤종신이 말한, ‘작가(크리에이터)는 외로워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20여 년 전쯤, 사진에 빠진 적이 있었다. 사랑에 가까웠다. 하마터면 사진작가가 되는 줄 착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무척 외로웠다.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보내던 일 년 동안의 시간을 잘 버티게 해 준 건 사진이었다. 다시 돌아온 실험실 상황은, 공직에 나간 교수님 덕분에(?) 있던 사람들마저 다른 곳으로 흩어지게 된 이후였다. 끝까지 남은 건 나였고, 실험실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올 마지막 제자였다. 그래서 나는 박사 마지막 2년 반 정도를 외롭게 보냈다. 그나마 함께 지내던 선배의 졸업으로 정말 최종 1년 반은 적막하고 큰 실험실을 혼자서 통째로 쓰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누군가 썼던 책상의 한쪽엔 작은 홈시어터 장비를 갖춰 저녁이면 영화를 봤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 마당에 그래도 됐으니까, 내 맘대로였다. 그래도 꼬박꼬박 실험실엔 제때 나왔다. 때때로 다른 실험실 사람들과 함께 밥도 먹고 했지만 혼자가 편했고, 극강의 외로움을 장착하고 지냈다. 당시 사진들을 보면 그런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있다.


취업하자마자 놀랍게도 그런 외로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울려 지낼 사람들, 해야 하는 일, 새롭게 생기는 인연과 부산한 주변의 공기. 그런 것들이 외로움으로부터 나를 끌어내 버렸다. 바쁘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더 이상 사진에 취미를 붙이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나의 외로운 기분을 담아낼 피사체’로 주변을 관찰할 기분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의 취미를 몇 년 동안 즐겁게 누렸던 나로서는 아쉬웠지만, 다시 외로운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돌아갈 용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시간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20대 대학원생으로 가졌던 외로움과는 결이 다르다. 그땐 인간으로서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외로움에 직면해 있었다. 실험실에 혼자 있었다는 물리적 환경도 그렇지만, 학위 과정에서 오는 외로운 시간은 어쩔 수 없다. 가정과 가족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현재의 외로움은, 글을 쓰려고 앉아 키보드를 가만히 쳐다보고, 화면에 깜빡거리는 커서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음에서 오는 답답함의 외로움이다. 주제만 던져주면 ChatGPT가 글의 얼개부터 아예 작품까지 만들어 주는 시대지만, 아날로그적 접근이 익숙한 나로서는 스스로 숙제를 내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바로 글쓰기의 순간이다. 잠시라도 외로움에 빠져들어 작가적 낭만을 풀어내 보는 시간이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며칠에 한 번은 글을 ‘짓는’ 행위의 순간에 나를 외롭게 몰입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혹여 외로움에 몰두하여 지나치게 자기기만적이거나 지금처럼 감상적인 감정에 빠지게 되는 것은 경계하는 편이다. 그건 마치 어렸을 적 일기장에나 적어둘 법한 부끄러운 글이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오늘의 이 글은 일단 외로움으로 시작하였으니, 끝까지 이렇게 가야 하지 싶다. 글이 끝나는 시점에 이르러 비로소 현실을 자각한다. 아, 이걸 포스팅하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우스울 거야. 그러나 오늘 컨셉은 끝까지 유지해 보자. 외로움이 글을 부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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