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부서의 사람과 회의를 하다 보면 가끔 민망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우리는 어째서 남들 같은 제품이 안 나오나요?’
‘우리 기술력은 왜 어딘가 부족한가요?‘
‘뭐 새롭고 다른 것 없어요?’
남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때로는 절대적인 기술 차이에서 온다. 최근 동료와 나눈 얘기를 요약하자면, 화장품의 제형이란 것이 비슷비슷하지만 막상 발라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밸런스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성분만 보면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데 완성된 제품은 다르다고 한다. 그것이 경쟁력이고 기술 노하우가 되겠다. 이런 경우는 기술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맞다.
민망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정말 기술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마치 내 것은 하찮고 남들 것은 대단해 보이는 편견이 있는 경우에서다. 흔히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처럼 말이다. 오랜 시간 연구하고 발전시키면서 완성도를 높여 온 기술적 성과를, 단지 당사자가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고객에게 생경하다는 이유로 무시 아닌 무시를 받기도 하였다. 최근에 글로벌 회사에서 염증 노화라는 콘셉트의 기술을 내세우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무슨 제품이 있는지, 어떤 기술적 자산을 내세우는지 부랴부랴 조사가 진행되고 내용이 공유되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미 똑같은 기술 콘셉트의 제품, 연구 자산이 있었음에도 다른 회사가 내세우기 전까지는 (내부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도 낮았고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럴 땐 화가 나기보다는 허탈한 마음이 든다.
드물게는 의사 결정자가 ‘내 맘에 차지 않으니까’인 상황도 기술의 부재로 해석된다. 물론 회사를 비롯한 조직 생활의 기본은 나의 성과를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만약 의사 결정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설득력이 없는 기술적 성과라면 당연히 기술개발자들의 노력 부족을 반성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판단하는 사람의 취향이 반영되면 불필요한 눈치를 보게 된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꼬집어야 옳은 질책이다. 그래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때로는 (기술이) “있었지만, 없었습니다”가 되기도 한다. 설익은 기술을 상황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쫓기듯 발표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회의를 핑계로 있는 자료, 없는 결과 닥닥 긁어모아 일단 면피하는 상황도 있다. 한 번이라도 노출된 기술은 어쩐지 새로움의 가치를 잃게 되어 재수 없으면 다시 소개될 기회를 잃기도 한다. 아무래도 시장 트렌드에 민감한 사업을 하다 보면 기술의 깊이 보다는 넓이와 다양성에 방점이 찍히게 된다. 내부적으로 소모된 기술은 버려진 채 새로운 기술, 비어 있는 영역만 찾아보며 헤매는 일은 말 그대로 ‘소모적이다’.
반복적으로 이런 상황들을 겪다 보면 아쉬움을 버릴 수 없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남을 질책하는 것은 쉽다. 완벽한 것은 없으니 약점을 찾아 공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기술 담당 부서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나 부서도, 결국 문제의 해결에 힘을 합쳐야 하는 관계로 귀결되므로 비판보다는 대안을 찾는 질문이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내가 요즘 정리해 본,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의 방식은 이렇다.
-만약 우리에게 해당하는 기술이 정말 없었다면, ‘왜 우리는 이런 연구나 기술 개발을 고민하지 않았을까’, 고민했었다면 ‘왜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까’.
-이미 연구개발 했지만 제품에 적용이 안되거나 이해도가 낮았었다면, ‘왜 기술이 (내부든 고객이든)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까’.
“어떻게 하면 잘할까”라는 질문보다 “왜 안되었을까”를 묻는 것이 현실적으로 좋은 답을 찾아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상적으로 잘하려는 방법을 찾다 보면 없던 것에서 답을 찾으려고 일단 새로운 것, 더 많은 것을 내어 놓는 전략으로 간다. 자꾸 다른 것에 꽂혀서 정작 필요한 작업을 놓치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