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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Apr 10. 2024

새로운 부서에서 한 달.

새로운 부서로 이동한 지 한 달이 넘었다. 1층에 있는 사무실이라 바깥으로 봄의 풍경을 제법 느끼기에 적합해서 만족스럽다. 


몇몇이 묻는다.

새로운 부서에서는 지낼만하냐고.


글로벌 동종업계에서 온 신임 부문장, 각 개발 부서의 시니어 연구원들 서너 명, 부문장을 서포트하는 전략 부서의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이전 부서는 별 일 없이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다고 여겨졌던 곳이다. 하나 최근엔 조직 개편의 당사자가 될 운명이라는 소문을 들으니, ‘내가 계속 거기 버티고 있으려고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해 본다. 다른 부서로 속히 옮겨서 개편을 피했다는 안도감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이란 없구나, 커리어 관리는 가능하다면 반 발자국 능동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 현실, 그러나 조금 다른 마음 가짐.

일을 하는 데 있어 각자 중요하게 놓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워라밸이 최우선인 경우도 있고, 성장이나 진급하는 것이 일 순위에 있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워라밸은 놓치지 않으면서 성장도 잘하고 싶다는 야무진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워라밸과 성장은 약간 상충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늘 1등은 워라밸이었다(퇴근 시간 못 잃어..).

새 부서의 업무 성격 상 회의가 자주 있다. 요즘은 회의를 한두 시간 하는 것은 기본이요, 그보다 더 하는 일이 잦다. 어떤 날은 계획 상 근무는 4시까지였지만 5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마무리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퇴근 시간이 예전에 비해 막 뒤로 밀리는 일이 생기는데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워라밸 기준에 따르면 분명히 짜증이 나야 하는데, 의외로 회의 시간이 주는 재미가 있다. 약간 이상해진 내가 의문스럽다. 예전엔 개념 잡는 회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 일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 - 이 있었다. 지금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최선의 방안을 위해 함께 고민한다. 그러다 보니 계획된 워라밸이 다소 무너지긴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내 능력에 대한 의문

상무로부터 숙제를 받았다. 쉽지 않은 주제였지만 잘 처리하고 싶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의 일처리 역량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뾰족한 답이 없는 성격의 질문을 받아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현황만 정리해서 보고하자니 왠지 무책임해 보인다. 생각도 없어, 성의도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오래 잡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우선 정리한 걸 보내드렸다. 그러면서도 '이게 최선이 아닐 텐데'라는, 불만족스러운 마음과 뭔가 보여주어야 하는데 안 되는 것이 영 마뜩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피드백이 왔다.

이전 부서에서는 나의 판단과 결정이 잘 먹혔다. 나의 전문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선 새로운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떠나 훨씬 조심스럽다. 다른 부서와 조율과 협상이 중요하다. Fact 위주의 판단이 최우선인 조직에서 있다가,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일을 하니 장점보다는 부족한 면이 더 크게 보이는 셈이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과 달리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다른 관점의 얘기이다.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충만하지도 않다.


새로운 상사에게 배운다

새로 오신 분에게 기대도 있었지만, 바라는 모습과 너무 다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 다행히(?) 아직까지는 좋다. 직급 상 상사라는 관계를 덜어내면, 일을 하는 파트너로서 만족감이 있다. 권위를 내세우거나, 예전의 발언을 번복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아직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옆에서 그를 보며 배우고 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할 뿐 아니라 감사하다. 그가 던지는 질문의 성격과 방향이 적절하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내부 직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꼼꼼한 감수를 한다. 내부 인원들과의 소통은 어땠는지에 대한 피드백 또한 바란다. 무엇보다 각각의 문제들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용어를 정리하는 점 등이 내가 바라는 스타일이다. 상무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크게 벽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도 내게는 중요한 요소이다.


“저는 ‘왜’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어요”


어쩌면 그분이 일하는 방식이 이런 기조에서 오기 때문일 것이다. 충분한 이해와 동의 없는 업무 추진은 서로에게 독이 될 뿐이다.


벌써 몇 명의 팀장과 상무를 경험했는지 모른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도저히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겐 (설사 궁합이 좋지 않더라도) 본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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