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활동이란 것이 펼쳐지면 보통은 그동안 보이지 않게 쌓인 감정이나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기 위해 뻔한 조사를 한다. 전형적인 프로세스는 각 팀별로 서로 하고 싶은 말, 요청할 사항을 적어내란 것이다. 기왕 좋게 바꾸겠다는 의도에 맞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아야 그래도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날 것의 이야기를 냈더랬다. 우리 조직의 불만사항(?)을 전달받은 상대 팀 동기의 말은 대뜸, ‘너무 표현이 세던데?’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들도 하고 싶은 말 많지만 적당한 수위에서 걸러냈는데 왜 너는 그런 배려도 없이 했냐는 핀잔 섞인 질타였다. 아 그래야 했나? 알만한 연차에 처신을 똑바로 하지 못한 나를 자책했었다.
회사 생활 20년이 되어 가지만, 나는 여전히 정치적(또는 정무적) 판단에는 부족하다.
최근 다른 팀과 갈등이라고 부르기도 무안하지만 어정쩡한 상황 속에 놓인 적이 있었다. 설명이 조금 복잡하지만 요지는 이렇다. 팀에서 새롭게 개발 중인 물질의 효과를 다른 팀에서 1차적으로 확인했다. 그걸 알게 된 소재 개발자는 다음 단계의 실험을 우리 부서에 맡겼다.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 팀에는 아직 셋업 되지 않은 방법을 우리는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효과가 좋다니 마침 진행 중인 과제에 적용해서 그냥 해보면 되지 싶었다. 그런데 업무보고 단계에서 마치 우리가 덥석, 성과를 가로채기 위해 냉큼 가져간 꼴이 되었다. 어찌어찌 담당자들끼리 다시 회의를 했다. 결론적으로 우리 부서에서 평가하지 않기로 했고 의뢰자는 괜히 우리에게 미안하다 했다만, 뭔가 팀 간의 관계를 애초에 면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은 나의 책임이 느껴졌다(일을 받을 때 결정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역시 정무적 판단이 부족했던 부분이다. 따지고 보면 결국은 같은 연구 조직에서 나오는 공동의 결과라고 생각한 내가 지나치게 순진했나 보다. 의뢰를 받은 것은 선의였다. 다른 뜻은 없고.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상황이 발생하면 발끈하곤 했다. 누가 욕심부리는 것이라 비난하는 마음도 가졌다. 난 팀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라던가, 각 팀의 이익보다는 그냥 일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내가 가진 생각과 철학, 또는 일을 대하는 태도는 때론 조직 생활에서 중요하지 않게 작동하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그런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받게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유가 있겠지.
냉소주의는 아니다. 살다 보면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와 상대의 눈높이에서 보는 세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 정무적 판단이 서툰 나를 탓하거나 자책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저 선의라는 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황에서 조심스레 꺼내볼까를 한 번 더 고민해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