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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y 24. 2024

마인드셋을 바꾸기, 그리고 행동할 용기.

일반 연구직에서 전략적인 업무를 하는 부서로 이동한 지 어언 두어 달이 넘었다. 연구소의 전략이기 때문에 일하는 건물과 만나는 사람들은 예전 그대로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몇 번의 보직 이동과 발령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이전 부서와 사람들에게 대해 제삼자의 시선 - 즉 객관성을 어느 정도 가진 눈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 이상하리만치 ‘예전 부서에서는 당연하던 것들’이 한 발자국만 떨어져도 (심하게 얘기하면)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하게 보였다. 그만큼 우리는 내가 속한 어딘가에 대해 객관성을 갖기 어렵다. 또한 집단의 논리와 생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압도된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집단 착각>(토드 로즈)에 의하면, 개인의 판단은 대게 다수가 결정하는 그것에 동조된다. 스스로 판단할 만큼 충분하고 확실한 정보가 없다면 확신은 사라지고, 다수의 타인을 따름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갖는 셈이다.


중간중간 약간 다른 경험을 하긴 했어도 20여 년 내내 데이터와 실험의 결과로 백업되어야, 비로소 의견을 내고 답변을 하는 태도로 지냈다. 그러한 사고 방식은 완전히 체화되어 회사 일을 대할 땐 더더욱 그렇다. 특히 최근 몇 년은 많은 공격과 요청을 받는 부서에서 일을 해 왔기 때문에 더욱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최종 책임이야 부서장의 것이었지만 1차 결재의 중간 책임자로서 어떻게 판단하고 의견을 내느냐에 대한 부분이 항상 조심스러웠다. 잘못 판단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파급력을 갖는 책임감이 큰 보고서를 내는 부서였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업무를 하면서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고, 나의 태도와 일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다. 원래 있던 곳에서는 (급진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덜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여겨 왔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세상에 내가 이렇게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나 싶다. 세상 사는 것이 상대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막상 겪으면서 뭐랄까, 한 마디로 의기소침해진 것이다. 의견을 낼 때도 조심스럽다. 이렇게 말해도 되나? 더 다듬어서 보고해야 하나? 내 생각이 틀렸다고 피드백 받으면 좀 부끄러운데? 회사밥을 이렇게 먹었는데 고작 결과물이 이 수준이라고? 아무도 묻지 않은 불필요한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뭔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지와 부담, 완벽주의적 성격으로 인한 장고의 시간은 어쩐지 여기서 일하는 방식에 걸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조직장이 원하는 건 홀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드러내놓고 함께 고치고 묻고 대답하며 완성해 가는 형태였다. 그걸 뻔히 알아차렸음에도 어쩐지 예전 일하던 방식, 즉 ’내가 익숙하고 편한 것‘에 집착하고 있었으니 나의 불안함을 들킬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니 때때로 자존감이 하락하고 자신감 없는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 내가 자신 있는 분야의 일이 아닌 경우 (당연하지만) 더욱 그랬다.


완벽이란 없다. 특히 전략 업무는 완벽이 아닌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작업이다. 계속 고민하고 고치고 또 바꿔보고 다듬는 과정의 연속이다. 동료가 어떤 작업 결과에 대해 ‘최종본 파일이면 좋겠네요’ 했더니, “We always think to improve”라는 조직장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그는 대의는 지키되 각론도 존중한다, 이런 입장을 보여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비로소 일하는 스타일을 바꿔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다만 깨달음을 얻는 것과 그에 맞게 행동으로 바꾸는 것 사이의 간극 또한 깊다. 흔히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뀔 수 있다는 표현에 동의하지만, ‘생각만’ 바뀔 수 있고 사람은 보통 게으른 편이다. 생각만 달리 하는 건 솔직히 (내게는) 쉬운 일이다. 말이야 뭔들 못하랴. 행동을 바꾸는 건 관성을 타파하는 것, 익숙한 지점과 멀리 떨어져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쨌거나 흥미로운 사실은, 아직도 난 일터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10년 정도 다녔을 때 ‘이 정도면 회사 일을 좀 아는군’하는 자만심에 빠졌었다. 일이라는게 별거 아니네 싶었다. 실은 그런 건방짐으로 시작한 글이 ‘연구하는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을 논하는 시작이었다. 그런데 막상 10년을 더 다녀보니 스스로 꽤 한다고 여겨왔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다. 실은 모르는 걸 배워보려고 뛰쳐나온 것이긴 한데 적응의 시간이 영 녹록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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