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을 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May 20. 2024

내 책을 우연히 만났음에.

동탄에 있는 모 고등학교의 입학 전형에 다녀왔다. 아이의 엄마에 비하면 (보통의 아빠들처럼) 학습이나 학교 과정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주말 나들이도 할 겸, 나름 시설 좋다는 학교 구경도 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서게 되었다. 다만 결정적으로 당사자인 아들은 가기 전만 해도 시큰둥했음이다. 중학생쯤 되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어딘가 나간다는 건, 부모로서 인내심에 대한 일종의 시험에 드는 것과 비슷하다. 나가네, 마네하는 설득에서 시작해서 사소한 이유가 불씨가 되어 괜한 말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학교 입시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강당에 모아 놓은 3백여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아주 능숙하고 유려한 말솜씨로 선생님과 졸업생의 자신감 넘치는 학교 얘기를 들었다. 장단점이 명확한 학교라 기대와 걱정이 확실해서 괜찮았다. 그리고 이어진 학교 투어 시간. 재학생들이 짝을 지어 10여 명 내외의 인원을 통솔하며 학교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도서관 앞에 이르렀다.


‘3만여 권이나 되는 책을 소장 중이에요’라는 자랑스러운 말을 듣고 입장했다. 도서관 특유의 냄새가 있다. 숨을 들이키며 들어가다가 문득 혹시 여기 내 책도 꽂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만 권 정도 되는 책 중에 하나라면 영광이겠지만 설사 어딘가 있다고 해도 알아차리긴 어렵지 싶었을 터다. 그렇게 몇 발자국 떼지 않고 움직이던 그때 - 익숙한 녹색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


정말, 아니 진짜로, 혹시 이건 설정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쓴 책이 바로 눈앞에 딱 있었다. 일반적인 도서관의 특징처럼 수많은 책들이 서가에 꽂혀 있고, 누군가 대출해서 최근까지 본 책들은 보통 정리를 위해 따로 모아 둔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모아둔 책들 사이에 다소곳하게 꽂혀있지 않은가! 같이 간 아내와 아들도 놀라서 서로 마주 봤다. 아내는 이내 사진 찍으라며 슬쩍 위로 올려 주었다. 갑자기 이 학교, 아들이나 엄마보다 내 마음에 더 든다.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 생각되었다. 몰래카메라는 아니겠지?



책을 내고 난 후 주변인의 질문은 늘 ‘돈 많이 버셨어요? 인세 들어와요?’ 이렇다. 그럴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아유, 그걸로는 벌어먹고살기 어려워요가 내 답변이다. 얼마 전 팟캐스트로 들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꽤 유명한 작가가 나왔는데 똑같은 말을 하더라. 책을 수십 권이나 썼지만 그걸로는 생활이 어렵다고.


출간하고 돈 많이 벌었으면 더 좋겠다는 기대와 상상은 해보았던 것 맞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 역시 잘 안다. 경제적 보상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어쩐지 글을 쓰는 행위의 목적성이 지나치게 불경해지는 것 같아, 그러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섭섭한 건 어쩔 수 없다. 기대했던 보상이 줄어들거나 없으면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해서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있다.


그러나 내가 쓴 글이나 책이 나이와 성별, 하는 일 불문하고 누군가의 손에서 읽히고, 공감을 얻는다거나, 종사자가 아니라서 잘 몰랐던 정보를 전달해 준다면 그것으로 실은 꽤 보람찬 일이라는 것! 그걸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연구하는 회사원 이야기를 브런치에 쓸 때 내 마음은 얼마나 진지하고 사명감 넘쳤는지 모른다. 그땐 출간할 계획도 없었는데 말이다. 진심으로 집중해서 쓰고 또 썼었다.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나의 책은 어쩌면 중요한 걸 놓쳐가며 글쓰기를 심드렁하게 하는 현재의 내게 주는 경고와 각성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한 땀 한 땀 쓰는 작가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