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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이해하다

EBS '자본주의' 서평

by nay

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그리고 공산주의의 몰락을 목도하면서도, 나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이해해 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94년에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선배들로부터 자본주의는 굴절된 욕망으로 가득찬 부조리한 체계이므로 자본가는 내쳐져야 한다는 시각부터 배웠다. 목적은 명확했다. 부조리한 사회,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삶, 양심이라고는 없는 자본가들의 끝없는 욕심을 보라. 그것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20대 청년들의 막연한 동경.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현재의 나는 자본가가 만든 회사에서 착실하게 일하며 월급을 받아 살고 있다. 분명 마르크스의 논리 대로라면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 밖에 없는데, 용하게도 그 틀을 조금씩 바꿔가며 살아남았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근본적인 가치는 그대로 둔 채 옷을 갈아입으며 살아남았으니, 이쯤되면 살아있는 생물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부'를 지키고 싶은 똑똑한 몇 사람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자본주의의 진화(?)를 가져다 준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이 이러하니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공부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본격적인 공부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EBS에서 방영되었던 동명의 프로그램을 책으로 발간한 이 책은 적절해 보인다.



가장 신선하고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내가 은행에 갖다 바친(?) 돈의 흐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찾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자유롭게 융통되는 형태라는 것을 여태 몰랐다니.. 정말 단 한번도 그런 생각 가져본 적이 없다. 자본주의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금융 이해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금융 자본주의사회에서 금융에 대해 모르는 것은 총 없이 전쟁에 나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역설하고 있다. 사실, 우리 가정도 부족한 금융 이해력 때문에 돈을 날린 적이 있다. 지금은 아예 이름조차 없어진 모 금융회사의 채권 상품을 멋도 모르고 구매했던 것이다. 망하기 전까지 일정 수준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고, 단 한번도 금융 상품에서 원금을 손실한 적이 없다보니 의심조차 안했었다. 후순위 채권이란게 뭔지도 모르고 덜컥 가입했던 어리석음의 결과로, 2개 상품 중 하나는 그나마 원금이라도 보전했지만 7년에 걸쳐 돌려받게 되었다. 나머지 한 상품은 원금 마저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은행과 금융권의 위치,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명확히 꽤뚫지 못한 내 탓이다. 최근에 영화 빅쇼트를 무척 재미있게 봤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여준 영화인데, 오류가 가득한 시스템 속에서 남들은 발견하지 못한 일확천금의 기회를 파악한 일부의 천재들(?)이, 앞으로 다가올 혼란을 틈타 어마어마한 돈을 챙기는 얘기다. 남들의 몰락은 누군가에겐 돈을 버는 기회가 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특히나 지금과 같은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핵심이다.



asmith.jpg Adam Smith

최근 들어 아담 스미스의 사상과 그의 저서가 재발견 되고 있다. 그의 철학적 사상을 담은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이 그것이다. 그는 부자들이 무한정 이기적인 부를 추구하면 안된다고 했다. 타인에 대한 동감과 도덕적 판단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 시스템을 꿈꿨던 그의 사상이 그리워지는 지금의 팍팍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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