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가는 소리

by nay


출근이 없는 주말은 보통 끼니 걱정으로 시작하기 일쑤다. 아침을 먹으며 하는 말은 거의 늘 이렇다.


“점심은 근데 뭐 먹지?”


이런저런 메뉴를 던져 본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누군가의 리뷰나 평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나가며 봤던 식당을 가볼까 후보에 올려 보는 것이다. 아내와 나 사이에서 결정이 잘 안 되면 아들에게 “점심 뭐 먹을래” 물어보지만 딱히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가끔은 그래도 먹고 싶은 걸 강하게 주장할 때가 있다. 주로 라면이나 치킨 같은, 본인 중심의 메뉴를 꼭 먹고 싶은 경우에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 아내의 선택을 따르기 마련이다. 식당에 대한 정보의 양과 질이 나와 아들에 비해 많고 높아서, 뻔한 메뉴를 벗어날 기회가 많다. 그녀가 던지는 후보에 대해 딱히 반박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몇 개의 선택지 중에, 최근 회사에서 먹었던 것과 비슷한 종목이 아니면 된다.


보통은 새로 생긴 집을 가본다. 궁금함을 못 참는 아내 성격 덕분이다. 어떤 책에서 본 적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급적 새로운 식당을 가보는 것이 ‘더 좋은 식당을 발견할 기회’에 좋다고 했다. 확률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많다던가.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해질수록, 더 나은 식당을 찾으러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예전에 가봤던 곳 중에서 덜 실패할 곳을 찾아가라는 내용이 기억난다.


어쨌거나 점심을 정하고 나면 저녁까지 정해야 마음이 놓인다. 매 끼니를 사 먹거나 시켜 먹는 것은 지양하는 관계로 점심을 사 먹으면 저녁은 집밥으로 한다(반대의 경우도 있다). 만약 저녁 끼니를 정하지 않았다면 아침 먹은 후 점심까지 빈 시간에 필히 ‘오늘 저녁은 무엇으로 할지’ 질문이 나오기 마련이다. 먹고사는 일이 인간에게 중요하다는 걸 매주 주말이 되면 새삼 느끼곤 한다.


이번 주말은 맑았다. 주말 아침에 비가 오지 않으면 참 좋다. 보통 토요일 아침엔 빨래를 하기 때문이다. 출근하지 않으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거동에 상관은 없지만 집안일을 정비하려면 중요한 요소다. 이번 주는 분명히 장마가 시작된다고 일기예보에서 그렇게 강조를 했건만, 아마 그건 다른 지역의 얘기였나 싶다. 다만 원래는 대부도인가 어딘가에서 열리는 골프 대회의 갤러리 참관을 신청했었는데, 비가 온다고 하여 일찍 취소해 버린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예보가 최근 제법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엔 틀렸다. 하지만 덕분에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회사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지난 2주 넘게 새벽에 꼭 한 번씩 잠이 깨곤 했다.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중요한 일이 지나갔다는 여유로움 때문인지 8시까지 잤다(8시에 일어난다는 것은 나에겐 대단한 늦잠이다).


일반 빨래는 토요일에 해서 바짝 말렸고, 일요일엔 손빨래를 했다. 쌓여 있던 빨래를 널고, 마른 것을 개키고 나면 다음 일주일을 버틸 무기를 마련해 놓은 것과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리고 이것도 밥 먹기와 비슷해서, 내일 뭐 입을지 정해 놓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나마 내일 것까지만 생각해 두는 편이다. 새로운 시작이 되는 월요일이니까 잘 입고 가볼까 싶어진다. 그렇지만 모레, 글피까지 OOTD를 정해 놓는 치밀함은 없다. 그렇게 사는 것도 살짝 피곤한 일이다.


언젠가 모 아나운서가 과학 유튜버에게 ‘왜 주말은 짧다고 느껴지나요?’ 하고 물었더니, 실제로 물리적인 시간이 주간은 5일, 주말은 2일이라 “그냥 원래 짧은 게 맞습니다”라는 답을 했던 시시껄렁한 농담을 생각해 본다. 소싯적에 개그 콘서트 엔딩곡을 들으며 좌절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에 공감했던 적도 있다. 아니, 더 올라가면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라는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열심히 불렀던 시절이 있었다.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아쉬움이 쌓이는 소리
내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


아들은 농구하러 갔고, 아내는 소파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일요일 저녁 7시 16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주말을 보내며, 타자를 치고 있다. 노찾사의 노래에선 ‘엿장수가 아이 부르는 소리, 두부장수 짤랑대는 소리, 가게 아줌마 동전 세는 소리’를 찾아 헤맸는데, 21세기 주말을 보내는 나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더위를 날리는 작은 손풍기의 백색 소음과 두 손이 분주히 움직이며 나는 자판 소리뿐이다.

그리고 그 소리들 속에서, 나는 새롭게 다가 올 한 주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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