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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에 미친 사람들 이야기

'슈독 (Shoe Dog)' 서평

by nay

슈독이란, 신발에 미친 사람을 말한다.


한 편의 성장드라마를 보는 느낌

어떤 사람의 자서전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기억이란 것은 상대적이고 왜곡될 수 있다. 자서전은 보통 성공 스토리를 다루기 때문에 분명 bias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권의 자서전을 읽었다. 하나는 현재 내가 다니는 회사의 창업 스토리,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기업인 애플과 레고.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좋아하긴 하지만 창업자의 이야기를 읽을 줄은 몰랐다. 가장 큰 이유는 2016 빌 게이츠의 추천 도서 중, 우리 말로 번역된 책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흥미진진한 얘기에 푹 빠졌다. 한 회사가 어떻게 커가는지, 어떤 시련이 닥치고 또 그걸 극복하는 과정들이 정말 재미있다.


과감한 도전, 어쩌면 무모한 시도

20대의 나이에 자신이 가진 꿈을 위해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운동 선수였으면서 스스로 '슈독' 이었던 필나이트((나이키의 창업자)의 좌충우돌 스토리에 끌리는 것은, 아마도 보통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맘에 드는 회사의 신발을 팔고 싶다고, 있지도 않았던 회사 이름을 만들어 수입 판매를 하는 필나이트의 행동은 어쩌면 무책임해 보이기도 한다. 그랬던 그가, 그리고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의 목표와 신발에 대한 애정 그 자체 때문이다.


나이키라는 브랜드에 대한 이해가 달라보인다

나이키에 대한 내 기억은 저 멀리 초등학생 (당시는 국민학생)으로 올라간다. Swoosh라고 부르는 나이키 로고를 멋지게 따라 그리려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형이 새로 출시한 운동화를 샀다.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와 있는데, 곧이어 갑자기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현관으로 뛰어가 보니 새 신발만 없어진 것이다! 아마 누군가 형의 뒤를 몰래 따라와 훔쳐간 모양이다. 내 기억 속 나이키란 브랜드는 그랬다. 훔쳐서라도 갖고 싶은 가치가 있는 신발, 브랜드.

처음부터 나이키란 이름으로 출발한 줄 알았더니 탄생하기까지 여러 고충이 있었다. 앞으로 나에게 있어 나이키란, 어렸을 적 선망의 대상과 함께 이제는 어떤 한 사람의 도전의 결과로 기억될 것이다. 알고나면 달리 보인다는 말을 실감한다.


죽었다 깨어나도 창업자 정신을 갖기는 어려울 듯

이 책의 미덕(?)은 창업자에 대한 영웅적 서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신발에 미쳐있던 슈독이 어떻게 회사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성장하고 위기를 헤쳐나갔는지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비록 오늘과는 다른 경쟁의 구도 속에서 태어난 회사였다고는 하나, 당시에는 당시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었다. 파산할 뻔 했던 시기를 지나며 더 단단해지는 모습 등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흔히 말하는 '창업자 정신'이 더 위대해 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에 비해 이미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회사에 들어온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과연 창업자 정신이란 것이 생길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메슬로우가 말하는 '자아실현'의 가치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는 조직과 본인의 성장을 동일 시 하며 살기도 하겠지만 일반인들에겐 참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되었다.


'미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바꿔가는 세상의 모습에서 내가 배운 것

책의 내용엔 수많은 슈독들이 나온다. 나이키를 창립한 필나이트만이 아니다. 여러 '미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바우어만 코치다. 아마 내가 R&D 조직에 있기 때문일게다. 그의 연구개발 내용과 당시 어떤 생각이었는지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늘 머릿 속에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잘 달릴 수 있을지 고민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끊임 없는 새로운 시도들을 보며, 비록 나에게 창업자 정신은 부족할지 몰라도 더 나은 기술과 제품을 위한 열정은 넘쳐야 하지 않나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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