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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질을 넘어 격의 시대로.

'격의 시대' 서평

by nay

저자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삼성에 입사해서 신라호텔을 거쳐 세브란스 병원으로.. 그 다양한 경력 속에서 추구한 바는 한결 같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나은 경험을 하게 할 것인가?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나은 경험을 하게 만들려면 스스로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제안하는 것이 바로 '격'이다.


격을 한 마디의 말이나 단어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두루뭉술하다.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의 내용에서 다루는 다양한 격의 예시들을 보며 떠오르는 격의 정의는 무형의 자산, 감성적인 무엇 등 형이상학적인 것들이다. 저자 스스로도 격을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몇 가지로 볼 수 있다고 제시한다. 이는 숙성시간, 태도, 절제된 행위 등이다. 특히 숙성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태도나 행위는 단기간에 ~척 할수는 있어도 이것이 일관된 형태의 것으로 누구에게나 드러나려면 (드러내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그것은 그만큼의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양과 질의 시대를 넘어 격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에는 보여주기식 성장 위주의 시대가 끝나가는 것이 담겨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것 - 공간, 시간, 인간 - 이 '사람'에게 맞춰지는 시대다. 이는 차별화와는 다르다. 남과 다른 것을 제공한다는 것이 격의 시대를 대변하진 못한다. 격이란 결국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되 매우 디테일해야 한다. 사실 격이란 말을 정의하기 어렵다고 계속 얘기했지만, 본문에 나와있는 내용 중 이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격은 장대하고 종합적인 개념이지만 실천은 초디테일이다'.

질을 넘어서는 격이라는 개념은 사소하다고 보이는 모든 것까지 완벽할 때 표출되는 것이란 뜻일게다.

격 있는 예시로 든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대부분 공간에 대한 내용들이다. 아마도 저자가 호텔업에 종사하면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기에 격에 대한 많은 생각과 논의가 공간에 대한 것으로 나오는 것 같다. 공간이 중요하다는 말은 연구로도 밝혀져 있다. 단순하게는 천장 높이가 높으냐 낮냐에 따라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 생산성에 차이가 있다고도 한다. 5S라고 부르는 정리정돈, 청소에 대한 개념도 역시 공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다만 격의 예시가 그런 공간적인 부분에 많이 한정되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사무실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해본다. 내 사무실, 연구 공간이 격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거창한 격을 떠올리는 것은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고 본다.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격의 시작일 것이다. 간단하게는 내 주변을 정리하는 것, 정리된 공간을 유지하는 것, 내 정리된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어 스스로 변하게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이 실천적인 격이라고 생각한다. 이 태도가 몸에 배면 생활과 행동이 달라질 것이고 생활, 행동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격의 다른 이름은 그래서 몸에 배는 그 무엇, 즉 문화라고도 해석하고 싶다.

저자의 격이 드러나는 것이 그의 말과 글이다. 책은 매우 간결하게 쓰여있지만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다. 가볍게 읽히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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