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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하실까요?

차의 지구사, 서평

by nay

개인적인 선호도를 취하자면 나는 차 보다는 커피다. 차는 먹는 과정의 번거로움과 카테킨 특유의 씁쓸한 맛 때문에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다. 가끔 정말 맛있는 차를 마셨을 때의 기억은 뚜렷하다. 입사 동기가 녹차 개발 부서에 있었을 때, 저녁 먹고 들러서 우려내 준 차 한잔 마시던 생각이 난다. 예전에, 지금보다 훨씬 더 차가 소중하던 과거에는 차에 대한 의미가 더 컸을게다.


커피를 선호하는 내가 굳이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지식으로서 차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는 단순한 의도 때문이다. 차의 지구사라는 제목처럼 차의 기원, 각 나라별 차 역사와 문화에 대해 다룬다. 너무 많은 나라들과 문화권을 얘기하다보니 내가 별 관심 없는 문화권과 나라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다도가 가장 복잡하게 발달된 나라는 일본이 아닌가 싶다. 일부만 요약해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특별한 다실에서 시작한다. 차를 마시기 전 빈 속을 채워 줄 식사부터 한다. 식사도 따뜻한 밥, 미소장국, 생선, 채소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구이요리를 먹고 죽이나 국을 먹어 젓가락을 헹군다. 이후 녹차를 대접하기 직전 차의 쓴맛을 없애는 화과자를 먹는다. 이후에 정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차 마실 준비를 한다. 차 마시는 것도 복잡하여서 맛차 반죽으로 고이차 (진한 차)를 한 명씩 돌아가며 마시고 같은 찻사발을 사용해 닦아가며 마신다... 많이 줄인 내용이고 더 상세한 것은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

이렇게까지 마셔야 하나 싶은 생각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한 편으론 옛날에 차를 구하기 어렵던 시절인만큼 귀한 재료를 극진하게 다루는 것이 당연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전반적으로 '차 = 고급' 이라는 인식이 발달되어 있는 점이 의아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또한 그런 고급 재료의 장기적인 유통과 교역을 위해 발효차가 발달하게 된 점 역시 새로운 지식의 습득 기회였다. 발효차가 생긴 이유는 무역을 통한 차 상품 거래 시 풍미(품질)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발효를 안시키면 금방 상하고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애프터눈 티의 기원도 무척 흥미로웠다. 19세기 도시가 확장되면서 영국에서는 저녁을 일찍 먹던 식사 시간이 밤 늦게 바뀌고 점심을 가볍게 먹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길어진 점심과 저녁 사이엔 애매한 시간이 생겼다. 물론 배도 약간 고팠을 것이고. 이 시간에 차와 함께 요깃거리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이것이 바로 애프터눈 티의 시작이다.


원저자가 쓴 내용에 더해 한국인이 차를 잘 마시지 않는 이유에 대한 챕터가 부록처럼 들어있다. 기본적으로는 차 재배가 썩 좋지 않은 환경적 요인이 있다. 그러나 각 나라의 다양한 차 문화와 차에 대한 사랑을 확인해 보면 재배가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 보다는 우리나라의 식습관에 대한 측면에서 접근한다. 저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근거가 명확하진 않기 때문에 굳이 여기에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어디가서 아는 체 하는 썰 풀기에는 좋을 것 같다.


책에 대해 정리하다 보니 다시금 동기가 우려 내 주던 차의 향이 다시 떠오른다. 오늘은 좋은 차 한 잔 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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