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에 멍 때리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가 수십 년 보지 못했던 동무와 며칠을 함께 보낸 뒤, 공항에서 송영(送迎) 한 후 돌아오는 귀갓길은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 같다.
하구언 다리를 지나 다대포로 오는 길,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낙동강 물길은 쨍쨍한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고, 강변길섶 따라 흐드러지게 핀 금계국 꽃은 실바람에 황금들녘처럼 흔들린다.
얼마 전부터 우유보다 오트(귀리)를 넣은 카페라테를 좋아하게 되었고, 빈속 아니 빈마음이라 느끼면 따뜻한 카페라테가 생각났다.
차를 다대포 공영주차장에 주차한 후, 다대포 전경이 보이는 카페 창가에 앉아 좀 더 뜨거운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고우니 생태공원에 희미한 바람 불고, 대낮 햇빛에 그을리는 갈대들이 지쳤는지 어깨가 축 처져있다.
먼바다로 나가지 못해 갇힌 물길은 얌전했고, 갈대숲~숲 사이 갯벌 지하 지상으로 지어놓은 아파트에 사는 게와 조개들도 한낮의 햇볕에 몸 사리는지 보이지 않았다. 본능이지.
시간의 추가 기울어 태양도 수평선 아래로 쉬어갈 때면, 다대포 몰운대 구석구석으로 싱싱한 낙조가 스며들고, 높낮이가 적은 물길에 틈이 생기고, 바람마저 갈대숲으로 불어오면, 갯벌의 식구들도 요란한 삶의 흉내를 내기 시작할 것임을 알기에,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카페를 나섰다.
「태양은 몰운대에서만 뜨고 진다」
금계국꽃 지천한 낙동강변길 따라
물길 닿듯 발길 닿은 다대포 몰운대
두송반도 허리 곳곳 채워진 윤슬과 갯벌
부는 해풍 맞서다 지친 하루마저 빛물감에 물들어
수평선에 몸 숨기는 노을을 보라
빈 여백으론 감당치 못할 풍경을 보라.
낙동강 물길 휘돌아 모래톱 쌓아
썰물과 밀물에 희끗희끗한 금모래 은모래야
갈대숲, 잔물길 사이 수줍게 바람 부는
고우니 생태공원 터 좋은 곳에
갯벌 층층 쌓아 아파트 지은 작은 게, 조개들아
전입과 전출만 부지런해도 삶이 보장되는 풍요한 땅
고니도, 노랑부리저어새도 돌아올 약속의 땅.
몰운대 능선 어디에서든
해풍 등지고 금빛바다 바라보다
시간의 무게추 점점 기울어지면
싱싱한 낙조가 내게로 온다
검은 금빛 노을이 네게도 온다.
태양은 몰운대에서만 뜨고 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