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한 주 동안, 전 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혼 전의 결혼생활에 대해 생각을 하고, 스스로 우울해지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 꿈도 꾸고 있다. 꿈에서 난 전처를 만났다. 그리고, 전 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성공적인 자신의 커리어를 갖고, 멋진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전 처... 그리고, 그녀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내 모습. 아내의 유학을 지원하느라, 모은 돈도 없어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살다가, 더 이상 회사에서 숙소를 제공하지 않게 되어서, 근처에 원룸을 구해 나간 내 모습... 꿈에서 전 처는 정말 행복해 보였고, 내 모습은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난 그렇게 불쾌한 기분으로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었다. 이런 뒷맛이 좋지 않은 꿈은 한 번으로 끝이 나질 않았다. 이번 한 주에만 벌써 3번 이상 비슷한 꿈을 꾼 것이다. 하루는 전 처에 대한 꿈, 하루는 전 처의 부모에 대한 꿈, 또 하루는 전처와 아이를 갖고 행복하게 사는 꿈...
요즘 전 처에 대한 감정이나 이혼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많이 사그라든 것 같았다. 그래서, 나 또한 이혼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아니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원룸을 구해서 이사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나만의 공간이 생기니 갑자기 드는 생각... "내가 이혼 전에 원룸을 구해서 아내와 함께 살았다면, 이혼이라는 결과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이지만, 몸과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하니, 다시금 예전의 묵혀둔 생각과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전 처에게 잘했더라면, 이혼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부족했기 때문일 거야..."라고 말이다.
자책을 하고 나면, 갑자기 우울해지면서, 내 주위의 모든 일들이 다 의미 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태어난 김에 사는 삶이지만, 그 삶이 재미가 없으니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그림이나 사진 모두 의욕을 잃고 있으니 정말 큰 일이다. 그림은 숙제를 하기 위해 억지로 하는 기분이고, 사진은 전혀 찍지 않는 것이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도 지금 나 자신이 우울증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조금만 중심을 잃으면, 줄에서 떨어져 끝이 없는 바닥에 떨어져 버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말이다. 그런데, 떨어질 듯하면서도 용케 중심을 잡고 있는 건, 바로 내 손에 잡혀있는 '사람'이라는 조그마한 부채 하나 때문이다. 중심을 잃으려고 할 때마다 이 조그마한 부채 덕분에 중심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매주,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을 나누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려고 하는 내 마음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맞추고 있다.
주위에서는 새로운 이성을 만나보라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이성을 만나는 것도 두렵기만 하다. 나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나의 부족함을 보고 실망하고, 그렇게 전 처와 같이 날 떠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고 상대가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면, 덜컥 겁이 나서 도망을 친다. 왜냐하면, 나를 조금만 더 알면, 실망스러운 내 모습을 들킬 것 같아서 무섭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고, 급작스런 현타로 마음이 어지러운 요즘... 오늘도 "괜찮다. 괜찮아"를 스스로 되뇌면서, 다 찢어진 자그마한 부채를 들고 있는 육중한 몸으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