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만루홈런을 꿈꾸며
지난 주말에 반가운 전화가 왔다. 내가 어려울 때, 항상 나에게 길을 보여주던 멘토형이 오랜만에 전화한 것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다 보니, 항상 새벽 일찍 전화가 오지만, 멘토의 전화는 언제나 나에게 특별한 쉼을 준다. 그런데, 이번 연락은 나에게 쉼보다는 묵직한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박사학위 공부하는 게 어때?
멘토의 제안은 나에게 신선한 도전이었다. 원래 난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걸 인생목표로 세웠었고, 그 목표를 차근히 준비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을 준비해서 공부를 하고,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한국에 돌아와서, 전 처를 만나 결혼한 것이다. 그렇게 결혼하고 나서도, 신혼 초에는 국제기구를 준비했고, 그를 위해 박사학위를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처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난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나의 꿈인 국제기구 진출을 포기했다. 그렇게, 나의 인생 초중반에 가졌던 꿈을 완전히 포기하고,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나의 열심은 소득 없이 끝이 나고야 말았다. 공부를 마친 전처는 해외로 도망을 쳤고, 전 처의 부모라는 사람들은 그 문제에 자신들이 피해를 입을까 봐 나한테서 철벽을 치는데 급급했다. 그렇게, 난 "가정"이라는 두 번째 목표도 실패했다. 그렇게, 인생의 실패를 겪고 난 뒤에, 내 삶은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느라 정신없는 생활을 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마음정리를 했더니, 무언가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이제 난 혼자이고, 평생을 혼자로 살아갈 확률이 높은데, 퇴직 후의 삶에 대해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지 않으면, 노후의 내 삶이 고달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그림과 사진을 배우고 있지만, 그건 취미생활 이상은 아닌 것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 도중에, 마침 멘토가 나에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박사학위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박사학위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어떤 분야에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것인가?"가 메인 이슈인 것이다. 인생 초중반의 꿈은 20여 년을 계획하고 준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사라진 현재 나에게 남은 건 사라진 열정과 매일 약해져 가는 몸뚱이밖에 없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일까?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맞는 걸까? 정답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중반전을 넘어 후반전으로 가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기대하며, 인생을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불현듯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