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직업이 나오는데 소요되는 시간 50년
요즘 인공지능이 뜨거운 화두다. 예전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글쓰기, 그림 같은 창작 분야까지 AI가 침범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나는 하나의 고민에 빠졌다. 내가 세웠던, 퇴직 후 계획했던 일들이 그때까지 과연 유효할까?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계시겠지만, 인공지능이 현실로 들어오는 과도기적 상황은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아프지만 받아들이고, 새로운 변화에 맞춰 인생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창작 분야는 AI가 쉽게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사이 인공지능은 무섭도록 발전했고, 나 역시 그 도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한 달 전부터는 내가 쓴 글을 ChatGPT와 Claude로 감수받은 후 브런치에 올리고 있으니까. 여전히 글은 내가 쓰지만, AI의 도움을 받아 오타나 중복 표현을 다듬는 정도다. 그런데 정말 놀란 건 영상 스토리보드를 만들 때였다. 몇 주 전, 올 하반기에 영상을 만들어 SNS에 올리겠다고 마음먹고 수업을 받았다. 그때 기획의 중요성을 배우며 스토리보드가 영상 제작의 핵심 단계라는 걸 알았다. 문제는 마침 코로나에 확진되어 몸이 많이 아팠고, 스토리보드 경험도 전무했다는 것이다. 몸은 아프지만 영상은 만들어보고 싶어서 한 가지 묘수를 떠올렸다. 바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내가 썼던 글 하나를 AI에게 주고 이에 맞는 영상 스토리보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는 '파괴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몇 차례 대화를 주고받은 끝에 AI는 내 글 내용과 보유 장비, 코로나로 인한 활동 제약까지 고려해 완성도 높은 스토리보드를 제안했다. 유튜브를 오래 봐온 내가 읽어도 상당히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물론 제안받은 스토리보드를 그대로 촬영하지는 않았지만, 영상 초보인 내게는 전문가 컨설팅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 인공지능이 제안한 스토리보드 내용을 참고해 1분짜리 릴스 영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도 이번 영상기획과 비슷하지 않을까?" AI와 대화하며 글의 구조를 짜고 초안을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무서워졌다. 퇴직 후 작가로 활동할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이 무산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누구나 AI의 도움으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내가 퇴직할 즈음엔 작가의 정의 자체가 'AI와 협업하여 글을 쓰는 사람'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나는 경쟁력이나 고유성이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에 따른 새로운 수요도 창출된다고. 하지만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그 새로운 수요는 지금 당장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전 산업혁명 때를 봐도 새로운 환경에 맞는 수요가 생기는 데 20년~50년이 걸렸다. 지금의 변화가 백 년 전보다 빠르다지만, 그래도 새로운 수요가 바로 생기지 않을 것이기에, 변화하는 미래를 퇴직 전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여유롭게 주어지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올 하반기에는 내 인생 계획을 새로운 변화에 맞춰 인생 계획표를 조정하는 시간으로 보내려 한다. 현재의 가치에만 기반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예상하고 준비하는 것. 문과 기질이 다분한 나에게는 생각만으로도 도전이다. 기존 인생 계획에는 인공지능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개척가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건... 인공지능이 도와주지 못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