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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심만보(天心萬步)

11월에 있을 개인전 준비 시작

by 나저씨
나저씨 작품


추석 전후로 한동안 정신을 놓고 살았다.

특히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해야 할 일들 앞에서 자꾸만 눕고 싶었다.

그저 흘러가는 하루에 몸을 맡기며,

이렇게 조금 쉬어도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달력을 보니,

개인전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올해 상반기,

전시 공간을 예약했을 때만 해도

시간은 넉넉하다고 생각했다. 여름쯤엔 모든 준비가

끝나 있을 거라 믿었고,

전시는 그저 마무리 과정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일상은 나를 붙잡았고,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갔다.

게으름이라기보다, 마음의 방향을 잃은 탓이 컸다.

내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다른 일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반성하기 위해,

개인전 주제를 ‘Baby Step’으로 정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것들이

재능도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하였고,

수년 후 지금의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완벽한 걸음이 아니라,

다시 걷기 시작하는 걸음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작품의 나열이 아니라,

내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과정의 기록이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순간들이 모여 결국 내가 되고,

그게 이번 전시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가을은 원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지만,

내겐 ‘천심만보(天心萬步)’의 계절 같다.

하늘처럼 탁 트인 마음으로, 다시 만 걸음을 걸어보려 한다.


조금 늦었지만, 다시 시작하기엔 딱 좋은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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