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딱 10프로만 덜 행복하길 바래
오늘따라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게 유난히 힘들었다. 비몽사몽 멍한 상태로 욕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다. 그런데 거울 속에서 유독 강렬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녀석이 있었다. 내 머릿속에 더 이상 숨어 있기를 거부한 흰머리였다.
분명 몇 주 전엔 하나만 보였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그새 친구들을 데려와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건지....... 흰머리가 나는 건 시간의 차이일 뿐 언젠가 일어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는 덜 되었나 싶다. 늘어난 흰머리를 멍하니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전처 생각이 났다.한국에 들어왔다는 건 알고 있는데, 이 추운 날씨에 잘 지내고 있으려나? 행복하게 살고는 있으려나?! (음, 솔직히 말하면 나보단 아주 조~금 덜 행복했으면 좋겠다).
12월이 주는 특유의 멜랑꼴리한 공기가 나를 감쌌고, 나는 자연스럽게 전처를 떠올렸다. 그런데 신기한 건, 시간이 흐르고 내 내면이 조금 단단해져서인지 그녀를 바라보는 내 감정이 더 이상 '분노'나 '후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 내 삶은 그렇게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더 이상 이혼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지 않고, 전처를 미워하거나 사무치게 그리워하지도 않는 상태. '무덤덤함'에 가까워진 것이다.
물론 이혼이 할퀴고 간 상흔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도 부부 예능이나 연애 예능은 채널을 돌려버리고, 길거리에서 행복해하는 커플을 보면 가슴 한켠이 욱신거리긴 한다.
'그때 내가 좀 더 이해하고 옆에서 지켜줬다면 상황이 바뀌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가정을 해보기도 하고, 전처의 가족들 안부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많이 치유된 것 같다. 상대를 향한 감정이 날 선 미움이 아니라, 그리움과 아련함 그 어딘가 중간쯤에 머물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기예보엔 폭설이 온다더니, 창밖엔 비만 추적추적 내린다. 예보가 빗나가는 날씨처럼,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서 더 재미있는 건 아닐까. 그런 겉멋 든 생각을 하며 글을 적어봤다.
부디 오늘 저녁, 내가 다시 거울을 볼 땐 더 이상의 흰머리가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오늘 하루도 힘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