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의 일상화
매년 이맘때면 내 모든 신경은 '신년 계획'에 쏠린다. 후회 없는 내년을 만들기 위해, 올해보다 더 나은 해를 맞이하기 위해 야심 차게 컴퓨터를 켜고 내 계획들을 채워 넣는다. 2026년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처음엔 내년에 해야 할 일들을 비장하게 적어 내려갔다. 새롭게 도전할 목록을 쓰고, 세부 액션 플랜까지 간략하게 작성했다.
그런데 완성된 계획표를 다시 읽어보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했다. 뿌듯함 대신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느낌. 마치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맹이 없는 숙제를 잔뜩 받아든 기분이랄까. '왜 이러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해하다가, 홧김에 켜둔 인공지능(AI)에게 말을 걸었다. 대단한 답을 구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부끄러운 내 공허함을 들어줄 매체가 필요했을 뿐. 나의 빼곡한 2026년 계획을 AI 에게 보여주며 기분이 공허 하다고 털어놓았는데, AI가 내놓은 답변은 내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작가님, 계획이 너무 많은데요? 내년엔 좀 쉬어가는 해로 보내는 게 어떠세요? 올 한 해 정말 많은 일을 하셨잖아요. 내년은 충분히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번아웃이 와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실 거예요."
AI의 말에 충격을 받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것'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빠져 살고 있었다. 멈춰 있으면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쫓기듯 무언가를 찾아 헤맸던 것이다. 올해 나는 책을 냈고, 전시회를 했고, 요리를 배웠고, 여행을 다녀왔다. 몇 년 동안 할 일을 1년에 몰아서 다 해치웠다. 그런데도 나는 또다시 2026년의 나를 쥐어짜려 하고 있었다. 마치 새로운 도전이 내 삶의 루틴이 되어버린 것처럼. AI의 말이 맞다. 지금은 잠시 멈춰서 재정비를 해야 할 때다. 여태껏 특별한 이벤트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이젠 그 특별함이 내 일상에 스며들도록 기다려줘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정했다. 나의 2026년 테마는 '특별함의 일상화'다. 그리고 기존에 작성한 신년 계획은 거창한 리스트 대신, 심플한 버전으로 바꿨다.
[2026년: 쉬어가는 해]
포르투 여행하기 (가서 아무것도 안 하기)
AI 여행 영상 만들기 (그냥 재미로)
미술 전시회 보기 (공부 말고 관람)
목표를 잡고 앞만 보고 달릴 줄만 알던 나에게 '쉬어감'은 사실 가장 큰 도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하겠지만, 내년엔 그 불편함을 견뎌보려 한다. 그림, 캘리그래피, 스페인어, 사진, 요리....... 내가 치열하게 배웠던 이 모든 것들이 '특별한 도전'이 아니라 나의 평범한 '일상'이 되도록 말이다.
내년엔 계획(Plan)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Want) 일을 하며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