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 곰씨 관찰일기

추석의 고통(The agony of Chuseok)

by 나저씨

22년이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9월이다. 2022년은 정말 나에겐 다사다난한 해였다. 작년에 삼재 마지막 해였고, 올해부턴 좋은 일만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이혼을 하게 되고 부정맥으로 건강이 나빠진 것을 보니, "내 인생은 왜 이리 박복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만 한다. 누구 말처럼 이혼한 게 나에게 더 좋은 것을 가져다주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이 글을 쓰는 상황에서 2022년은 내가 살아온 삶에서 최악의 경험 베스트 3 안에 들어간다. 그런데, 나의 고민은 여기서 끝이 나지 않는 게 문제다.




9월이 오니 날씨가 시원해져서 기분은 좋기만, 한 가지 큰 고민이 생겼다. 바로 "추석!" 추석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맞다. 추석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을 볼 수 있는 매우 좋은 날이다. 하지만, 이혼한 나에겐 추석은 그 어떤 날보다 고민이 많이 되는 명절이 되었다. 추석이 되면 고향집에 내려가야 하는데, 고향집에 내려가면 가족 외에 상대해야 하는 큰 복병이 있다. 그건 바로, 친척들... 분명 내가 고향에 내려가면, 전(ex) 아내와의 결혼 생활이 어떤지 물어볼 것(친척들은 내 이혼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이고, 난 그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그 상황이 정말 싫었다.




이젠 제법 마음이 담담해져서, 친척들을 만나도 담담히 이혼했다는 이야기도 담담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도 난 친척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어머니 때문에... 며칠 전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추석에 어떻게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는 내가 추석에 고향에 오기를 원했었다. 그리고, 나는 고향에 내려갔을 때, 만나게 되는 친척들을 어떻게 대응 할 것이냐고 물어봤다. 어머니는 "친척들을 보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대답하셨지만, 나는 잘 안다. 시골에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차피 친척들은 명절에 우리 집에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친척들의 질문세례를 피하지는 못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난 어머니에게 물었다. "난 내려가서 친척들이 물어보면, 이혼했다 이야기할 건데, 괜찮냐고..." 그런데,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사실을 친척들에게 말하는 것은 싫으신 것이다. 그리고, 주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분이 나빴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건 괜찮지만, 왜 죄 없는 내 어머니까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건지 말이다." 그리고, 왜 어머니는 이혼한 자식을 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시는지도 말이다. 물론, 어머니는 죄책감 같은 건 없다고 하실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 말씀은 사실일 것이다. 사실이지만, 어머니 무의식에 있는 죄책감이 내가 물어본 질문에 서로 상충하는 답변을 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채버린 나로서는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친척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모습의 원인이 나라는 걸 알기에..




어머니는 죄 진 것도 없는데... 그저 아들이 그릇된 선택으로 아내를 잘못 들여서, 이혼하게 된 게 전부인데 말이다. 나 또한 화가 난다. 왜 우리 어머니는 남의 눈치를 보고 죄책감을 느끼시는지 말이다. 대화의 결론은 이번 추석도 난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아니, 어머니는 고향에 오라고 하셨지만, 내가 내려가지 않겠다 한 것이다.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고, 그런 상황을 만든 나 자신에 대해 용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언제쯤이나 나와 어머니 모두 웃으면서 추석을 맞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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