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 곰씨 관찰일기

No Internet, No Life

by 나저씨

회사에서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인터넷이 되질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무선 인터넷 신호는 빵빵했지만, 그 어떤 웹사이트나 서비스도 접속이 안되었다. 순간적으로 내 마음속에 패닉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삶에 인터넷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되는 산소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인터넷만이 유일하게 내가 퇴근하고 나서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달래주던 수단이었다. 전(ex) 아내가 공부하고 외국에서 유학한 기간을 포함하여, 내가 결혼했지만 혼자 보낸 시간은 5년 가까이 된다. 결혼 생활이 8년인데 떨어져 산 것이 5년이라니... 그 기간 동안, 난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지만 혼자였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우선, 전(ex) 아내의 가스 라이팅으로 자신감이 떨어질 만큼 떨어져서 다른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다. 게다가, 만약 내가 친구를 만나서 재미난 시간을 보내게 되어도, 만남 이후엔 언제나 죄책감이 느껴졌다. 전(ex) 아내는 공부하느라 힘든데, 나만 너무 호의호식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외부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다른 이를 만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외부에서 무언가를 즐길만한 재정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버는 돈의 약 80%가량이 아내의 유학비로 쓰였고 나머지 20%는 내 생활비와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일을 대비한 비상금으로 쓰였다. 그래서, 난 항상 돈을 쓰기 앞서, 계산을 하고 아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나 혼자였고, 매번 나가는 고정 지출 이외에도 갑자기 나가는 비용이나 집안 대소사 등을 대비해야 했기에, 난 누리기보다 포기하게 익숙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무언가 쫓기는 기분으로 살면서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외로운 기분으로 살아갔다. 그래서, 매일 퇴근하고 나면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인근 카페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돈이 예상보다 많이 지출되어, 나중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해야 했다.




그럴 때 적막이 흐르는 집에서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것이 바로 인터넷(더 정확히는 유튜브)이었다. 집에 가면 조용한 적막함이 너무 싫어서, 바로 유튜브를 켜고, 어느 BJ가 쉴 새 없이 떠드는 방송을 플레이했다. 방송에서 다루는 주제가 내가 좋아하는 주제여서가 아니라, 단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말이다. (그때, 처음으로 명절 때, 고향집에 가면 어머니가 보지도 않는 티브이를 켜고 계셨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퇴근 후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시청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던 내게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아주 큰 문제였다. 나는 인터넷의 부재로 갑자기 찾아든 적막이 견딜 수가 없었고, 무서웠다. 방에 나 혼자만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 느낌은 나의 사고를 서서히 정지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영업시간이 지난 때였고, 다음날에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난 적막함이 너무 견딜 수가 없어서, 서둘러 짐을 챙겨서 밖에 나왔다. 그리고, 도보로 15분가량 걸리는 곳에 있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에서 음료를 시키고, 카페 영업 종료 시간이 될 때까지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집안의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잡다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고, 그렇게 난 새벽 2시가 넘는 시간까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채 몸을 뒤척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오전 9시가 되자, 바로 인터넷 고객센터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고객센터는 몇 가지 정보를 물어본 후, 인터넷 테스트를 해 보더니, 인터넷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수리기사님을 보내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안도의 숨을 쉬는 것도 잠시... 전화기 너머에서는 다음날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다음날이라고?! 하루를 더 버텨야 한다는 건가?! 머리가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는 상황. 난 그날 저녁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난 수리기사를 맞이하기 위해,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집에서 대기했다. 오전 일찍 수리기사가 와서 인터넷 문제가 해결이 되었고, 그렇게 난 이틀 만에 집에 있는 애플 TV를 켜고 유튜브에 접속할 수가 있었다. 유튜브의 화면이 모니터에 뜨는 순간 난 이로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난 서둘러서 내가 즐겨 듣는 방송에 접속해서 영상을 플레이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내 마음은 머라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렇게, 인터넷 없는 이틀간의 삶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이 집에 연결이 되어 마음이 차분해지자, 갑자기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인터넷에 의존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었나?!라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유튜브도 보지 않고,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서점에서 사 온 책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고, 인터넷은 그저 노래를 듣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던 삶을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것들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변해버린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문제에 대해 앞으로 내가 어떻게 대처해 갈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인터넷에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말이다.




이번 인터넷 사건은 내 현재 삶에서 나를 채워주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위로의 대상으로 찾는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주는 기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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