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6] 곰씨 관찰일기

뚱뚱한데 착해 보여...

by 나저씨

나는 "착해 보인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20대까지는 "착해 보인다"는 말이 칭찬이라 생각했어서, 사람들이 나에게 착해 보인다는 말을 하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결혼을 하고 이혼까지 하는 세상의 풍파를 겪고 나니, 착해 보인다는 말이 결단코 칭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착하다"의 의미는 크게 2가지다. 매력이 없고, 호구 같다. 사실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호구인건 사실이라, 호구 같다는 말은 나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매력이 없다는 의미는 나에게 큰 내상을 주는 말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을 끌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굳이 "착하다"를 그렇게까지 확대해서 해석하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40대 중반을 넘어서 이제 후반으로 가는 나에게 있어서 "착하다"는 칭찬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난 평범함을 넘어서, 물과 같이 투명한 존재였다. 사람들을 내 주위로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도 없었기에, 언제나 인기가 많은 사람들은 내 선망의 대상이었다. 물론 나도 그들처럼 매력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내가 부족해서인지 게을러서인지 모르겠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게, 조용히 투명한 물과 같은 존재감을 내뿜으며, 학교를 디니고, 일을 하고, 결혼을 했었다가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내가 결혼을 실패한 이유도, 상대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 되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는 자책도 해보곤 한다.




그리고, 내가 착해 보인다는 말만큼이나 싫어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뚱뚱하다"라는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난 마른 체형은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몸무게가 제일 많이 나가는 학생 중 한 명일 정도로 비만이었다. 그러다, 30대 초에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서, 살을 빼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의 몸무게는 항상 90kg 초중반대에서 머무르고 있다. 살을 더 빼고 싶긴 하지만,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일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 때문에, 더 이상 살을 빼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내가 뚱뚱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전( ex) 아내가 나에게 항상 하던 말이 바로 "살 빼라"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전(ex) 아내는 나를 보면, 언제나 살 빼라 하고, 살이 쪄서 게을러 보인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살이 쪄서 옷을 입어도 이쁘지 않아서 점점 매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영향에서인지, 뚱뚱하다는 말에 대해 이혼 후부터,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마치 내 마음속에 커다란 트라우마가 된 것처럼 말이다.




내가 갑자기 싫어하는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하실 분들이 계실 텐데, 사실 내가 이번에 소개팅 상대에게 들은 말이기 때문이다. 몇 주전에 소개팅 상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고 이번 주에 두 번째 만남을 가지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상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듣게 되는 기회가 생겼고, 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신감이 급 하락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곧 50을 바라보는 사람이 착하다는 이야기나 듣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물론 내가 화가 난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났던 것이다. 상대방은 당연히 나에 대해 뚱뚱하다거나 착하다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모욕적인 언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난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착하다는 말 외에는 듣지 못하는 변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화가 난 것이다. "착하다"라는 이야기 외엔 그 다른 칭찬을 듣지 못하는 나의 무능에 화가 났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난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어, 잠시 풀이 죽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뚱뚱과 매력 없다는 이야기가 한 가지 맥락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아니,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도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조금씩 지쳐가는 것 같고, 외로워하는 것 같다. 특히, 이혼을 하고 난 후에, 더 외로움이란 감정에 빠져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이혼 후에 거쳐야 할 단계라고 생각하고, 나 또한 외로움과 절망감이라는 감정에 빠져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 해서, 내가 이런 감정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피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래서, 난 맞서기로 했다. 뚱뚱하고 착하다는 사람들의 말이 나에게 더 이상 상처로 다가오지 않도록, 나 자신의 트라우마와 싸우기로 말이다.




듬직(뚱뚱)하고 믿을 수 있는(착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000036390008 복사.jpg 경의선 책거리(NIKON FM2, NIKON ISO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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