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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Nov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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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풍경과 간절함 



깨진 달이 떴다. 빛은 가엾다. 증세는 깊어진다. 알 수 없는 침입의 흔적이 있었다. 은밀한 표정이 손톱에 박혀있다. 손톱을 물어뜯는다는 것은. 흩어진 날들의 잔해를 잘 청소하겠다는 것. 혹은 더 혼탁한 일상적 폐허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검은 잔해가 뿌연 살이 되도록 나는 정갈한 숨을 몰아 삼켰다. 서서히 지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곱게 빗질된 개 한 마리가 홀로 돌아다녔다. 양키시장에서 파는 군복 입은 아저씨가 가로수에 오줌 눈다. 도저하고 섬약한 삶이다. 사물의 텅 빈 무한함. 흔적의 사악함. 모두 나를 해할 듯하다. 흔들리는 계절을 유희하기에 나의 중심은 혼란으로 들끓는다. 친애하는 나의 고요함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자유라는 형벌에 처한 나는 서늘한 칼을 가지고 있다. 닿을 듯, 닿지 못하는 곳에서 바람은 날카로웠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공포를 제쳐둔 채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세상은 추상화로 곱게 난도질되어서 아름아름하다. 내 관능 안에서 일어나는 반란들은 참으로 볼품없었고, 볼품없어서 간절한 것이었다. 빈 손바닥 빼곡하게 그어져 있는 금들을 보면 온몸이 저릿한 것을. 다 쓰기에 여백은 많지 않고. 핑계가 많은 날에는 무릎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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