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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Nov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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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깊은 밤

 

밤이 깊어졌다. 깊다,는 단어는 내겐 동사다. 그것도 아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동사. 두꺼운 외투 속에 응집된 채 손을 더 깊숙이 찔러 넣고 걷는 밤들에는 마음과 마음을 더듬느라 쉬이 가벼워지지 못한다. 당면한 일상의 피로와 그 바깥의 경계가 허물어져서 나는 느슨하고 흐리멍덩한 사람이 된다. 여유인지 게으름인지 모르게 나의 시간은 조금씩 늦춰진다. 쓸쓸함이나 허무 같은 감정이 뿌리를 더 길게 뻗을 때마다 마음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야 했고, 그럼에도 발걸음은 옮겨야 했다. 이 겨울이 너무 아프게 춥지 않았으면 싶은데, 너무 추우면 외려 아픔도 잊어버린다는 모순이 문득 침묵이라는 거대한 심연에 나를 던져두고 눈앞의 나를 지워버린다. 그렇게 시야가 흐릿하고 나조차도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래도 지금 살아있지 않느냐고 어느 낙천적인 신이 떠들어대면. 나는 그를 증오하고, 증오하는 나를 증오하기 시작한다. 결국 작고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작고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은 소실이 빠르고, 때로는 애써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회복을 갈망하는 다급한 내가 그 사물과 풍경에 몹쓸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한없는 환멸이 일기도 한다. 여러 긍정과 낙천의 관념들이 나에게 부딪히며 들어올 때, 나는 차라리 내가 철저히 파멸해 가는 지경에 놓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렇게 자명한 고통의 순간에 있게 되면, 지금까지 읽고 들었던 수많은 구원의 언어들이 생살처럼 다가오기도 할 텐데. 아는 것이 많아서 괴롭고 외롭다는 것을 나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서 슬퍼한다. 나를 참으면 다만 내가 되는 걸까. 하늘은 부쩍 하얀데 나는 붉은 눈으로 하늘을 쳐다본다. 나는 내가 잃은 것들이 기억나지 않아 절망한다. 절망을 지고 쓰다 보면 지난 시간들을 구할 수 있을까. 그것을 알려주는 이는 없고, 아마 아무도 모르리라. 나는 이제 겨우 첫 문장을 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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