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
사람 구경
우리들의 생은 때때로 잠시 우리의 것이 아님으로써 완성되기도 한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희미한 움직임, 부서진 화려함이다. 모여들고 흩어지는 푸른 파편들이다. 우리의 역할은 그 흐름 속에 정직하게 존재하는 것이며, 그 흐름에서 잠깐의 실감과 안위를 경험하는 것뿐이다. 우리들은 석양에 묻어버린 얼굴과 움직임이 있다. 무음 속에 엉켜가는 신경들.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던 설명들. 그런 우리들에게 버티자는 말 대신 다른 할 말이 있을까. 버티자는 말이 텅 빈 구멍처럼 느껴질 때마다, 머뭇거리며 내려앉을 곳을 찾는 깃털처럼 삶이 삶 같지 않았다. 전념하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때, 문득 무언가를 망각하며 사는 느낌. 그것은 바람직한 상실인가 무의미한 윤회인가. 그러나 우리는 실현이나 자존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니. 날들의 억눌림과 억울함, 고통이나 규율 같은 것이 생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고 기꺼이 수긍할 수 있다면. 무수하고 무료한 밤이 깊어가는 것을 붉은 눈으로 직면할 수 있다면. 의지로 낙관했던 수많은 밤. 낯설고 영롱한 별들은 흔들거려서 그만큼 반짝인다는 것을, 새삼 바라보며 뜨거워질 수 있다면. 아직 살아야 할 이유들이 구석구석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늦기 전에 숨을 확장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