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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Nov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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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눈을 감고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감는다'는 동사가 즐겁다. 눈을 감을 때, 감는 것은 시야인가 마음인가. 나는 눈을 감는다, 고 말할 때. '감음'은 '덮음'보다 '재작동'이라는 이 행복한 몽상을 그냥 방치해 둔다. 눈과 마음은 밀접하다. 눈은 보기 위함이고 마음은 담기 위함인데. 보기를 차단함으로써 담겨있던 것들은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앞이 캄캄한데 마음이 왜 깨끗해지는가에 대해 나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덮기와 드러냄, 숨기와 찾기가 결국 하나다.


빛 한 점 없는 암(暗)의 세상에서 내 마음은 재작동된다. 선명하고 명징하게 살아나는 감각들. 고운 기억과 쓸쓸한 장면들. 들리는 것은 자명한 숨소리. 오는 것은 뺨을 슬쩍 스치는 실바람과 미세먼지 입자들. 가는 것은 눈앞의 혼란과 은밀하게 빠져나오는 내압이다. 그 외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음으로 외려 충만하다. 쉼표 같은 몰입의 순간. 무해한 장막을 두르고 고요를 더듬거리며. 세상의 얼룩이 지워지고 마음이 새살처럼 돋으면 나는 문득 다른 인간이 되어 있다. 일단 눈을 감고 나면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소박한 세계들. 생에 감각을 쥐고 자명한 마음의 두근거림에 나를 내려놔 본다. 순연한 해학의 울림이 여기 있다. 일상이라는 평면에 얼마나 많은 무늬가 있는지. 온종일 시퍼렇게 눈 뜨고 다니는 사람은 알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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