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
파멸의 느낌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 긴 새벽 주린 배가 신음했고 미처 나오지 못한 오물들이 퉁퉁 불어 있었다. 거울을 보니 몰골이 추악하다. 어제저녁으로 닭 가슴살 하나와 계란 두 개를 구워 먹고 아몬드 세 알 정도를 씹어먹었다. 밤새 꼬르륵꼬르륵 난리를 치더니 정작 눈을 뜨자 과하게 더부룩하다. 늘 이런 식이다. 새벽 내내 독이라도 들이마신 모양인가. 몸을 반으로 접어두고 잔 것인가. 뭐 그래, 특별히 억울한 일은 아니다. 미각의 즐거움으로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곤 했던 명랑한 나는 이미 오래전에 어디 묻혔다. 양배추 알약 두 개를 꺼내 신경질적으로 넘기고, 베란다에서 바깥공기를 들이마셨다. 햇살은 찬란한데 공기는 싸늘하다. 아, 이런 날은 최악이다. 빛이 밝고 추운 날은 도대체 뭐 하자는 날씨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온통 잿빛이던가 온화했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몸속에 장기가 모두 쏟아져 나올 듯한 숨을 내쉬었다. 이러다 정말 몸속에서 뭐가 튀어나와 눈앞에 선연한 핏기를 드러내며 꿈틀거린다면 좋을 듯했다. 그러면 나는 저게 뭐야, 하면서 그걸 또 멍청하게 물끄러미 바라보겠지. 이내 몽롱한 기운을 느끼다가, 시야의 전원이 꺼지고, 다시 일어났을 때는 한 내년 가을쯤 되었으면 싶었다. 그러면 생을 탕진한 죄로 내내 가슴 아리며 글이라도 실컷 쓸 텐데. ‘나의 쓸모’에 자꾸만 집착해서 나는 은은히 우울해져 있다. 이 불온한 허영심이 나의 죄악이다. ‘쓸모’라는 허영에 집착하지 않아야 비로소 아침의 볕을 순전히 받아들일 텐데. 인간의 허영심은 참으로 구제불능해서 때때로 하찮은 상념을 재련해 무언가를 창조시키지만, 그 외 다른 세계와는 분리되기가 십상이라, ‘뒤’에서 아슬아슬하고 우울하게 살 수밖에 없는 작위적인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의 ‘뒤’는 위로가 닿지 못하고 위태로우며 추악하고 욕심이 많아 늘 기진해 있다. 먼지 몸을 씻으며, 인간에게는 원래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곳은 매우 외지고 아늑하다. 의식적인 살갗의 테두리와, 무의식적인 영혼의 구멍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나의 하얀 겨울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