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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Dec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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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사람의 등은 내면이 얼굴이다. 사람의 등을 길이길이 응시할 때마다 나는 어떤 표정을 느낀다. 얼굴에서는 볼 수 없는 표정. 초라하고 초연하다. 그러나 다채롭고 무구하다. 가장 솔직하고 순전한 표정은 늘 뒤에서 짓게 되기 마련이라, 나는 사람의 등을 몇 없는 생에 명장면처럼 담아가는 버릇이 생겼다.  


등에는 슬픔도 고통도 있고, 희망이나 전율도 있다. 생의 정면으로 약동하는 젊음의 흥분이 있고,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어느 중년 여자의 묵묵함이 있다. 바다를 보는 사람의 등에는 감격과 설움이 있고, 산을 걷는 사람의 등에는 인내와 열기가 있다. 출근하는 사람의 등에는 바라보기 힘든 노인이 웃고 있고,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의 등에는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등’이라는 것의 본질이 어쩌면 가엾고 외로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언어가 그토록 등에 얼비치는 것을 보면.

   

나는 문득 어떤 등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한다. 둥글게 굽은 내 등에는 어떤 표정이 있는가. 내가 내 등을 상상하자니 자꾸만 연민 쪽으로 기분이 기울어 그만두었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일은 몇 년을 연습해도 나날이 난해하기만 하다. 결국 나를 보는 것은 타인일 뿐이다. 나의 등은 언제까지나 나의 오랜 숙제가 될 것이다.  


밤에 걷는 사람들의 등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가 있다. 가로등 빛에 등 주름은 더 도드라져 보인다. 분명 앞은 무표정인데도 등은 그렇지 않다. 나는 주름에 대해 생각한다. 주름이 말하려는 것은 무얼까. 그 어떤 고통에 익숙해지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겠지. 기어코 찢어지지 않으려는 엷은 막 같은 것이겠지. 그 유약하고 독기 찬 태세는 필경 무얼 위한 것일까.  


배의 반대쪽 부분. 사람을 상대하고 포옹하는 쪽의 반대편.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 늘 짓눌려 있거나 온기 없이 둥둥 떠다니는, 이내 조금 딱딱하게 굳고 반드시 휘어지는 곳. 적잖이 쓸쓸하고, 춥고, 굽고, 단단해지고, 우그러지기도 하는, 그곳은 필히 누군가의 손길을 요한다. 인간은 자신의 팔로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 없다. 그것이 등과 인간의 운명적 비애다. 아버지의 등을 쓸어내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음식으로는 두툼해지지 못할 얇게 꺼진 등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늦게 알았다.  


넓은 등. 좁은 등. 튀어나온 등. 꺼진 등. 굽은 등. 마른 등. 뻣뻣한 등. 떨리는 등. 곧은 둥. 딱딱한 등. 고독한 등. 슬픈 등. 온기를 잃은 등.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등. 나는 세상에 모든 등과 그 등에 어려있는 저마다의 그림을 보고 싶다. 누군가의 등을 보는 감수성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더 많은 등을 담고 싶다. 내 손이 더 많은 등에 닿아가도록 하고 싶다. 더 많은 등을 보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싶다.  


사람의 등은 가장 가깝고 아련하다. 언제든 만질 수 있고, 언젠가 만질 수 없다. 닿을 듯 닿지 못하는 것. 닿아도 닿아도, 닿았는지 알 수 없는 것. 가장 가깝고, 또 먼 것이다. 내가 만지는 것은 등이라는 가죽인가, 따습고 딱딱한 한 인간의 생애인가. 내 손이 누군가의 등을 쓸고 두드릴 때. 나는 내 손에게 고맙고, 그 사람의 등에게 고맙다. 내 손이 상대의 등에 무엇이 되든. 나는 계속 등을 쓸고 두드릴 것이다. 등이 있어 다행이다. 등에 마음을 전할 때 나는 가장 내가 되고, 내 손은 등에서 가장 손답다.  


누군가의 등을 보고 그 자리에 멈칫했다면. 어쩌면 생소한 아름다움으로 보았다면. 그 새삼스런 덧없음을 보았다면. 마지막 저녁이 서둘러 끝나기 전. 무럭무럭 사랑하기에 모자람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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