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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Dec 13. 2023

114

12.13

바람과 나     



다들 날아간다

쉬지 않고 걸었다

이제 우는 사람은 없다

다 날아갔다 


잎 한 장이 날아가고

술 한 입이 날아가고

책 한 장이 날아가고

숨 한 번이 날아갔다  


마음 한 자락 흐트러진다, 현란하도록

싸늘하고 어벙한 뺨에 손을 가져다 놓았다

이 순간 나는 노동자다, 숭엄하고 호탕한 노동자 

아무것도 필요 없다 

나 가진 것 본래 뭐 없었다 

맥주나 더 마시자 

한바탕 대담해지게 


우울하고 고독한, 그러나 어떤 것을 계속 만들고자 하고,

쓸데없이 감수성은 예민해서 자주 우수수 흩날리고,

이따금 분열, 그러나 영혼은 서정적으로 움직이며,

필경 자유와 지혜를 갈구하는 인간과 같이 놀 것은

바람 말고 아무것도 없다 


남들처럼 살자는 말이 끔찍스러워 나는 귀를 벅벅 긁었다

내가 죽는다면 아마 지겨워서 죽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찾지 말라 

모든 것들로부터 탈퇴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만든 모욕에 중독된 채로

나는 하얗게 날 것이다, 날아서 

저 어디서 막 자라고 있는

어린 식물에게 가서

멸망에 닿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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