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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Jan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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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리는 눈 속에서 정적이 피어난다. 정적은 흰 빛과 잿빛으로 어우러진 모든 엷은 푸름 속에 깃들어 있다. 정적이 거리를 열어젖힌다. 환하게 밝아진 거리에서 나는 갑자기 말을 잃고, 저 너머 어딘가에 환상처럼 일렁이는 또 하나의 세계를 보고 있는 듯하다. 내 인식은 집중을 거부한다. 나는 내 인식의 소란을 사랑한다. 물론 별안간 동공 안으로 들어와 가득한 이 환함의 정체를 나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함은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평온하다. 지금이야말로 아무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그립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무엇도 희망하지 않으며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감각만 존재하는, 그러므로 실존해 있는 이 명징한 찰나를 나는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하얗게 뒤덮이고 있는 이 세상의 극명한 색조에 지금 나는 가히 영원히 눈을 감기 싫을 만큼의 어떤 간절한 아름다움을 앓고 있다. 삶에 자연적 회복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일 것이다. 삶에 한가운데 해방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일 것이다. 의식적 지루함 사이로, 무의식은 시시각각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고독은 노래하고.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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