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대훈 Jan 12. 2024

124

잠수


우울이 범람한다. 환상과 공상이 주는 무성적인 삶에서. 우연한 낭만과 현실적 위축 사이에서. 과도한 반성과 습관적 자기혐오의 파열에서. 질투적 허상과 시대의 동떨어짐. 흘러가는 구름의 모호함과 부조리의 향연에서. 시장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의 지리멸렬과 타협이라는 몰락. 그 나약한 경멸 사이에서. 급진하는 피로감. 소화불량과 육체적 강박 사이에서. 영혼의 평온과 사랑이라는 아둔 사이에서. 혀 잘린 맹세와 올려둔 책임의 하중에서. 다시 탄생하고 자멸하는 빛살. 불안한 빛이 아파트 벽면을 쓸어내리는 오후의 길 한가운데서. 쏟아지는 무기력과 불경한 언어의 뒤범벅. 오랜 습관처럼 자리 잡은 질서와 자유의 구속. 지혜라는 이름의 신과 그 신의 노예가 된 내면의 비굴함. 예민이라는 파괴와 순수라는 태초의 독촉 사이에서. 한 생을 잘 늙히기 위한 모든 필요조건 사이에서. 평가라는 애정과 간섭 사이에서. 불현듯 모든 것들로부터 탈퇴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힌. 어떤 충동적 발작. 그러나 못내 어디도 떠나지 못하고 이곳에서 말라죽기를 자처하는 독기의 숙명. 이내 체념하고 푹 내쉬는 숨의 끔찍스러운 온기 사이에서. 독상(獨床)의 치 떨림과 싱거운 눈물로 천천히 잠겨가는 사계. 이 오래된 거리를 걸으면서. 다정하게도 아래턱까지만 차오르는 현세의 바다. 하염없는 잠수의 나날. 이 세상이 살만한 곳임을 증명하려는 사명과 안부를 묻는 혀를 향한 집착 사이에서. 더 크게 비명 칠수록 뽀글거리는 기포. 작고 오종종한 물방울들 사이로 희끗 보이는. 어딘가 다급한 얼굴. 저 객관이라는 찬란한 창공에서. 나는 나를 죽이려 하고 결국 또 죽이려 하지 않고. 

작가의 이전글 12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