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몬드 카버 "뚱보"

by 정호성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는 다른 단편집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전면에 드러나 있어서 은근한 맛이 없다. 이야기 안에 대화도 많아서 산만하다. 그런데 이 소설집 중 "뚱보"는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하고,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사건 너머에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져버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번역도 좋고 잘 읽히는데, "쌕쌕거리다"는 표현이 좀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 무슨 단어를 번역했는지 궁금해졌고('puff'였다), 원문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이곳에서 전문을 볼 수 있다.

https://genius.com/Raymond-carver-fat-annotated


1.


화자인 나는 식당의 여급이다. 나는 그때까지 본 사람 중 가장 뚱뚱한 사람을 서빙하게 돤다. 그는 말쑥하게 생겼고 잘 차려입었지만 그에 대한 주된 인상은 그 크기, 그 중에서도 보통 사람의 세배나 될법한 손가락이다. 그 손가락은 아주 크고, 굵고, 크림같다.


그 손님은 대단히 정중하고, 아주 친근하게 말한다. 다만, 주문을 할때는 혼자 왔으면서도 '우리는 ~ 주문할께요' 이렇게 '우리'라고 표현하고, 말하는 중간에 쌕썍거렸다. 그는 내가 물을 엎지르는 실수를 해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필요 이상으로 공손한 표현을 사용하고, 자신이 빵을 많이 먹는 것에 대해서 변명한다.



2.


그는 주문한 음식과 함께 빵을 계속 먹어대고, 나는 그에게 여러번 빵을 가져다 준다. 나는 그가 오랫동안 식사해서 식당에 혼자 남아있어도 개의치 않고, 남자가 잘 먹는 것을 보면 보기 좋다고 말해주고, 편안하게 코트를 벗으라고 하고, 내가 살이 찌고 싶다고 말을 건낸다. 나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편, 내 마음 안에서 나도 잘 모르는 어떤 감정을 느낀다.


맛있게 드세요, 하면서 나는 설탕 단지 뚜껑을 열고 들여다봤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가 자리를 뜰 때까지 나를 계속 쳐다봤어. 내가 뭔가를 찾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더군.

나는 스페셜 디저트를 그 뚱뚱한 남자 앞에 내려놓고 초콜릿 시럽을 뿌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담은 큰 그릇을 그 옆에 놓았어. 고마워요. 그가 말했어. 천만에요, 라고 내가 대답하는데 - 어떤 감정이 엄습하는 거야.

3.


그를 시중드는 내내 다른 종업원들은 그가 뚱뚱하다고 비웃지만, 나는 그 종업원들이 못마땅하다. 그들은 그를 오직 뚱뚱한 사람으로만 대하고, 그 이유 하나로 그를 조롱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의 덩치와 그의 손가락에 놀랐지만, 그가 말쑥하고 옷도 잘 차려입었고 공손하게 얘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스스로 자신의 덩치에 대해서 부끄러워한다는 것도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종업원들에게 이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전에 그저 뚱뚱한 사내, 뚱뚱하기만 한 인간 그 이상의 어떠한 의미도 없다. 다른 종업원들이 못마땅한 나는 그들에에 이렇게 말한다.


맙소사, 정말 뚱뚱하네! 리앤더가 말했어. 저 사람도 어쩔 수 없어. 그러니 그만 해. 내가 대꾸했어.

루디, 저 사람은 뚱뚱해.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그 역시 사람들이 자신을 오직 뚱뚱하기만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내가 남자들이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하자 그는 '글쎄요, 그걸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하고 답하고, 내가 살좀 붙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안돼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찌지 않는 게 좋아요.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라고 답한다.



4.


그는 식사를 마치고 돌아간다. 청자인 리타는 얘기가 뭔가 재미있어 지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는 식당에 와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간 것 뿐이다. 그런데 그 이후, 그 식당의 요리사 루디와 같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상념에 잠긴다. 만약 나에게 자녀가 있고, 그 자녀가 이렇게 뚱뚱해 보인다면 어떻게 될까. 루디도 그 손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지, 루디가 어렸을 때 동네에 뚱보가 있었는데 그들에 대해서 어떠한 것도 기억나지 않고 단지 그들이 뚱뚱했다는 것만 기억난다고 한다. 그 뒤 내가 원치 않음에도 루디는 나와 성교를 하려 들고, 이 때 나는 힘을 빼고 있다가 내가 끔찍하게도 뚱뚱해지고 루디는 아주 작아져서 있는 것 같지도 않다고 느낀다(번역에서는 "루디가 조그맣게 되어버리고 날 제대로 안지도 못한다고" 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은 "so fat that Rudy is a tiny thing and hardly there at all"이라고 되어 있다). 내가 이렇게 느낀 것에 대해서 리타는 재밌는 얘기라고 하지만, 나는 그녀가 이 사건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우울하다. 그리고 내 인생이 변할 것임을 예감한다.


내 인생이 어떻게 변하게 된다는 것일까. 아마 나는 루디를 떠날 것이다. 내가 루디를 떠나는 이유는 루디가 그 손님이나 어렸을 때 이웃에 살던 그 친구를 단지 뚱뚱한 사람으로만 인식하고 그들을 경멸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측면에서는 다른 종업원들도 마찬가지고, 나는 그 종업원들로부터도 어떤 면에서 떠날 것이다. 아마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웃긴 얘기로군, 이렇게 말한 리타로부터도 떠날 것이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그 손님에게서 뚱뚱한 것 이상을 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고, 이 사실이 그들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변하기 전 예전의 나와 변하게 될 나 사이에도 거리가 생길 것이다.



5.


이 소설이 꽤나 마음에 든다. 레이먼드 카버가 어디선가 '좋은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그 전보다 우리의 체온이 일도 오르거나 내려갈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는데, 일도 내려간 느낌이랄까.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고, 그 기분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주변 사람이나 환경들로부터 격리된다고 느낄 때, 다른 사람들이 속물이라고 느껴질 때 혹은 주변 사람들은 정직한데 내가 속물이라고 느낄 때, 다른 사람들이 비정상이고 나만 정상이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은 정상인데 나만 비정상이라고 느낄 때, 그리고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누군가와 어떤 시점에서는 더 이상 소통할 수 없겠다는 한계를 느낄 때, 바로 그 느낌을 위 소설의 화자인 내가 느낀 것 아닐까. 그리고 이로 인해 화자인 나의 인생이 전과 같을 수 없음을 될 예감하는 것이다.


이 소설 마지막 부분, '8월이다.' 부분도 특히 마음에 든다. 화자인 내가 느꼈던 약간 막연하고 모호한 감정들이 '8월이다' 한 문장으로 인해 구체화되고, 8월에 혹은 그 이후에 현실에서 어떤 사건, 그 손님을 서빙하지 읺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사건이 생기게 될 것을 예감하게 된다.



6.


(엄청나게) 뚱뚱하다는 것은 한 사람의 특성을 묘사하는 하나의 시각에 불과할 것인데,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크고 압도적이다. 이로 인해 그 사람을 쳐다보거나 말할 때 뚱뚱하다는 사실이 머리에서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예전 어느 뷔페에서, 정말 엄청 뚱뚱한 사람이 혼자 와서 식사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먹었다. 나는 그를 힐끔 바라보면서 마음 한구석에 시큰한 것이 느껴졌다. 아마 그도 누군가 이렇게 느낀다는 것을 알 것이다. 식당 안 대부분 사람들이 그를 힐끔거렸고, 그 옆 테이블의 어떤 아줌마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노골적으로 계속 쳐다보았다. 아마 그도 그 아줌마가 어떻게 쳐다보고 있는지 알 것이다.


그때 나는 나 자신과 그 식당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미워졌다.


단지 뚱뚱한 사나이가 식당에서 많은 음식을 먹고 있는 것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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