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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성 Jun 07. 2019

스페인에서 커피를 내주는 방식


그곳에서는 씩씩하게 내준다. '카페 콘 레체, 포르 파보르'를 나지막하게 말하면, 내 덩치 두배는 될법한 사내가, 예전에는 제법 깨끗했을법한 앞치마를 두른 채, 넙적한 두 손을 좌우 넓게 짚어서 바 위에 얹어놓고, 넓고 각진 턱을 위아래로 크게 주억거리며, '씨, 씨'를 외친다. 당신이 달라는 것은 우유 탄 커피 한잔이지만, 내가 내줄 것은 나의 영혼이라는 듯이.


아무런 상표도 인쇄되어 있지 않은 커피잔 받침대를 바 위에 던지듯이 내려놓고, 그 위에 스푼과 봉지설탕을 집어던지듯이 올려놓는다. 포타필터에 커피가루를 빼곡히 채워넣고, 지구를 흔들듯 탬핑을 하고, 달을 띄워올리듯 기계에 끼워넣는다. 기차소리와 함께 커피가 채워지고, 가스새는 소리와 함께 스팀우유가 더해진다. 박력있는 오른손으로 움켜쥔 커피컵을, 아직 운좋게 깨지지 않은 커피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컵 안 커피는 좌우로 흔들리지만, 주눅이 들어 넘치지는 않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커피 한모금을 마시고, 당신의 영혼이 무사히 전달되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주인은 눈을 찡긋거리며 한번 웃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커피를 다 마시고, 주섬주섬 동전을 꺼내 계산하면서, 그라시아스라고 말한다. 주인은 내 눈을 뻔히 쳐다보며 외치듯이 "데 나다  데 나다"(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냐)라고 대꾸한다. 거리로 나오면, 그날 하루의 나머지를 보낼 힘이 채워져있다. 그 커피 덕분에 혹은 그의 영혼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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