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mo ludens Apr 03. 2024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5장

세계의 정복자들 - 기원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로마의 건축

고대그리스의 예술은 알렉산드로스를 통해 인도를 거쳐 동아시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인도의 간다라 지역에서 동서양의 만남은 시작되었고, 간다라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불교가 고대그리스의 옷을 입고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되었다. 콘트라포스토를 취하고 주름진 옷을 걸친 붓다상은 고대그리스의 신체에 각진 얼굴이 올라 선 모양을 띤다. 이 불상 양식은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까지 전해졌고,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불상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동양적이라고 생각하는 불상에는 고대그리스 장인들의 숨결이 남아있다.


고대 로마의 능력

이탈리아 반도에서 로마는 기원전 8세기 나약한 도시국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9세기가 지난 후 그들에게 이탈리아 반도는 너무 좁은 세계가 되었다.

로마는 동쪽으로는 알렉산더가 나아갔던 대부분의 땅을 취했고 서쪽으로는 갈리아지역과 이베리아반도, 남쪽으로는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를 정복했다. 그들은 온전히 지중해를 그들의 호수로 만들었고 "우리의 바다" (mare nostrum)라 불렀다. 로마가 이러한 성취를 한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학습능력'이다.

로마는 그들의 초기시기에 주변의 강한 세력이었던 에트루리아 인들에게 토목기술을 습득했다. 그들이 얻은 능력 가운데 제국을 건설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기술이다.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여러 다른 지역을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합은 반드시 분열의 위기를 동반한다. 동일하지 않은 것을 동일한 범주에 넣는 것이 통합이기 때문에 모두의 만족을 취할 수 없다. 흡수되는 쪽은 최대한 '유지'하려 하고 흡수하는 쪽은 최대한 '주입'하려 한다. 로마는 '주입'하려 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리고 흡수되는 쪽의 많은 부분을 인정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발생하는 반란 세력은 강력히 응징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들불처럼 번지는 반란의 파도를 감당할 수 없다. 로마는 그를 위해 어마어마한 토목공사를 감행한다. 로마를 상징하는 유명한 세 가지 속담 가운데 하나는 이것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도로의 건설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의 지배령은 크게 두 가지 도로 체계로 구성된다. 데쿠마누스 (Decumanus)와 카르도 (Cardo)이다. 동서방향의 길인 데쿠마누스와 남북방향의 카르도는 도시 내부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 되고, 각 도시는 거대한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로는 4~5겹의 구조로 시공되었으며 가운데가 볼록하게 만들어져 배수가 원활했다. 이 도로는 각 지역 간의 물자와 정보교환 그리고 군대의 신속한 파견을 가능케 했다. 물론 강점은 곧바로 약점이 되기도 한다. 한니발은 이 길을 통해 로마의 성문 앞에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포에니 전쟁을 통해 국가라고 하기엔 상인연합체와 비슷한 카르타고를 점령한 로마인들은 상인 특유의 엄밀함과 이익세력 간의 견제와 균형감을 습득하여 로마법의 근간을 세운다. 그리고 포에니 전쟁의 영웅 한니발을 통해 알렉산드로스의 전술 '망치와 모루' 또한 습득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한니발은 자신의 전략에 패배함으로써 자신의 전략이 완벽함을 증명했다"라고 했다. 스키피오는 이후 카르타고를 점령해 '아프리카의 점령자' 칭호를 얻었다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예술에 있어서 그들은 고대그리스의 것을 모방했고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켰다.


로마의 조각

로마인들은 고대그리스의 조각을 모방하는 일에 몰두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많은 그리스조각들은 로마의 모작이 상당수이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곧장 자신들의 예술을 찾았다. 그리스조각에는 없고 로마의 조각에만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왼쪽의 그리스조각은 매끈한 피부의 젊은 청년의 모습을 나타낸다. 반면 오른편의 로마조각은 주름진 피부에 여기저기 흉터가 보인다. 로마의 조각에는 그리스에는 없는 '흠'이 있다. 그리스의 조각에는 '기록'이 없다. 흠집 없는 '신의 형상'이 있을 뿐이다. 로마의 조각에는 '인간 삶의 여정'이 있다. '서사', 즉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더 이상 '타고난 운명'보다는 인간의 '성취와 업적'에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현실적이다.


로마의 건축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한 권의 책이 헌정되었다. <건축 10서>는 비트루비우스가 남긴 현전 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서이다. 그보다 오래 전인 그리스의 건축가들도 건축서를 남긴듯하나 온전히 전해지는 것은 없다. 비트루비우스는 1500년 이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그림으로 유명하다.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90

비트루비우스가 글로 남긴 것을 레오나르도가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질서는 기하학으로 드러난다.. 우주의 행성은 원형으로 생겼고 원형으로 움직인다. 우주는 원을 닮았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32/33b) 우주는 신의 형상을 닮았고 그것은 부분으로도 전체로도 동일한 형상을 띤 구형이라고 한다. 구의 어떤 면을 잘라도 원이 나오기 때문이다. 땅은 사각형을 뜻한다. 사방 (동, 서, 남, 북)은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의 상징이며 인간은 하늘 (원)과 땅 (사각형) 사이에 위치한다. 천지인의 구조이다. 결국 인간은 소우주로서 대우주인 우주와 땅을 닮아있다.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세계와 인간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의 3 요소를 정리한다.

utilitas (유용성)

firmitas (견고성)

venustas (우아함)

이 요소는 2000년이 지나 근대 건축의 3요소인 기능, 구조, 미 (function, structure, beauty)로 이어진다. 이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로마인은 그리스인들의 건축양식 이외에 새로운 건축구조를 찾아낸다. 아치 (arch) 구조이다. 아치를 이용해 두 가지 공간구조를 만들어내는데 볼트 (vault)와 돔 (dome)이다.

가성비의 귀재인 로마인들은 하나의 구조로 다양한 공간구조체를 만들어냈다.

 

볼트 (궁륭)

볼트구조는 아치를 길이방향으로 연장한 것이다. 터널형인 이 구조형식은 로마를 대표하는 건축물에서 매우 자주 발견된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기원후 203년

인간의 성취를 강조하는 로마인은 신적인 성취를 이룬 자들을 위해 '승리의 아치' (triumphal arch)를 세운다. 그들의 업적은 영원의 재료인 돌로 지상에 오래도록 남는다. 아치구조에 그리스에서 배운 기둥양식을 부착하여 새로운 건축 양식의 길을 열었다.

<에뚜알 개선문> 샬그랭, 1806-36

이 개선문은 이후 자신의 성취를 과시하기 위해 여러 지도자들에 의해 재현되었다. 도시 파리에 지도상으로 '별표'로 표시되는 에뚜알 (프랑스어로 별)에는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에뚜알 개선문이 세워졌다. 새로운 규범은 전통이 되었다.


돔 구조

또 다른 공간구조인 돔(dome)은 거대공간을 만들기에 최적의 구조체이다. 이후 하기아 소피아 (hagia sophia) 성당이 이스탄불에 세워지기 전까지 로마에 세워진 <판테온 신전>은 무주공간 (기둥이 없는 공간)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로마의 판테온>, 기원후 125년

현재 로마 시내에 위치한 판테온은 기원후 12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하지만 원형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아그리파'가 헌정했다. 아그리파는 우리가 아는 그 이름이 맞다. 우리가 아는 ‘조각미남’ 본인이다. 몸이 허약했던 옥타비아누스 (이후 아우구스투스)에게 카이사르가 만들어준 단짝 친구이자 오른팔, 이후에는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딸을 내어주어 사위로 삼게되는 아그리파이다. 건물의 전면에 적힌 글귀는 이렇다.

M. AGRIPPA.L.F.COS.TERTIVM.FECIT

(루시우스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만들었다.)

판테온은 pan (모든) + theo (신)의 합성어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 '만신전'이다. 하지만 신과 비견될 만한 성취를 이룬 카이사르 가문은 최고신 주피터에 비견된다. 최고신 주피터는 라틴어로  ‘IUPITER’ 로 표기한다. 라틴어에는 알파벳 J가 없고 I로 쓴다. iu는 하늘, 낮을 뜻하고 piter는 아버지를 뜻하여 최고신인 주피터를 지칭한다. 최고신은 하늘에서 태양을 비추어 신전 내부를 밝힌다.

<로마 판테온의 내부>, 파니니, 1734

건물의 중앙 상단부의 구멍은 전설의 외눈박이 괴물 오쿨루스 (Oculus)의 이름을 쓴다. 직경이 43.44미터에 이르는 거대 돔은 기둥 하나 없이 온전히 원통형의 구조물 위에 위치한다. 건물은 단면을 보면 더욱 놀랍다.

완전한 원이 건물에 내부에 들어맞는다. 작은 지구가 들어선 신전에서 인간은 빛처럼 들이치는 신을 맞이한다. 천장부에 홈처럼 파여있는 것은 쿠퍼링이라는 기법으로 구조물의 무게를 줄일 뿐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28개의 쿠퍼링이 한 바퀴를 이루는데 일주일을 이루는 7일과 4주 혹은 4방을 뜻하는 자연의 숫자를 조합했다. 배열은 가운데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의 움직임처럼 방심원으로 퍼져간다. 건축물의 천장이 하늘을 뜻한다는 것은 내부가 북반구의 별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는 기록으로 완결성을 띤다. 이후 독일의 건축가 슁켈은 모차르트의 요술피리의 무대를 꾸미는데 이러한 모티브를 이용하기도 했다.

<요술피리 장식: 밤의 여왕 파트> 칼 프리드리히 슁켈 1816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로마 제국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건축물이다. 시민들의 주목을 끌고 에너지를 분출케 하며 소비를 통한 경제의 순환을 이끌기도 했다. 건물은 이름 그대로 거인같이 크다.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서 로마인들은 아치를 그래도 이용했다. 돌덩이를 그대로 케이크모양으로 쌓으면 자체의 무게도 무겁고 개구부를 만들기도 어렵다. 아치를 이용한 볼트 구조를 이용한다면 손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를 어떻게 구성할까? 3요소 중 견고성과 유용성을 취했으나 '우아함'을 드러내기 위해 그들은 고대그리스 건축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러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물에 도전한 그리스인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입면의 단조로움을 없애기 위해 그들은 고대그리스인들의 기둥양식을 모방했다. 하지만 그냥 쓸 수 없는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조합을 시도했다. 방법은 위로 쌓기였다. 위로 쌓는다는 것은 super ~위에 + positio 위치의 합성어로 <Superposition>이라는 원칙이다.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낸 기둥의 비례를 이용하여 가장 두꺼운 도리아 양식을 아래에, 조금 날씬한 이오니아 양식을 중간에 그리고 가장 날씬한 비례를 가진 코린트 양식을 위에 배치한다. 그러면 같은 높이의 층을 만들 경우 기둥이 위로 갈수록 얇아 보이는 효과를 주고, 실제로 구조적으로 내력이 줄어드는 위로 갈수록 얇아지는 기둥의 배열은 자연스럽다.


수도교와 욕장

아치를 위아래로 배치하는 기술은 또 다른 로마인의 업적에도 적용된다. apply의 귀재인 로마인들은 하나를 배우면 열 가지에 사용한다.

<퐁 뒤 가르>, 기원후 1세기

로마인들은 도시를 만들면 사람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상하수도 시설인데 로마인들은 이러한 인프라를 까는데 능숙했다. 수도교를 통해 로마인들은 도시에 필요한 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다. 한 때 로마의 인구가 100만에 달했을 때도 11여 개의 수도교를 통해 도시로 물을 흘려보냈고, 이 시기에 로마에 공급된 물의 양은 1980년대 뉴욕에 공급된 물보다 많았다고 한다.

공급된 물은 도시에서 분수대와 목욕탕의 건설을 가능케 했고 도시인들은 보다 청결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청결함은 사람이 모여사는 곳에서 질병을 줄여주었고 시민들의 생활을 활기차기 만들어 주었다.


마무리

로마인들의 학습능력은 자신들의 이전 시대, 같은 시대 주변지역의 많은 것들을 학습의 대상으로 삼게 했고, 제국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을 도왔다. 그들이 남긴 것 또한 이후 시기에 이어져 또 다른 많은 창조로 이어졌다. 독일의 예술가 괴테는 그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로마를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로마에 대해) 어떠한 새로운 생각도 하지 않았고, 완전히 생소한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오래된 것들은 분명히 생동감 넘쳤으며, 충분히 새로운 것으로 여겨질 만했다.

- Johann Wolfgang von Goethe -


창조를 위해 모방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 아니다. '결과적 모방'은 비난의 대상일 수 있으나, '과정의 모방'없는 창조는 신이 아닌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은 아닌 듯하다.

이전 11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6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