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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Apr 10. 2024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6장

기로에 선 미술 - 5세기에서 13세기까지: 로마와 비잔티움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된 로마제국은 행정상의 용이함을 위해 동서로 나뉜다. 초기에 동서로마는 갈등이나 정쟁의 결과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단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분리는 이후 종교와 세속과의 권력 배분 문제로 돌이킬 수 없는 분열로 마무리된다. 동로마의 수도인 '비잔티움'의 이름을 딴 동로마의 미술이 '비잔틴 미술'이다. 비잔틴 미술의 특징을 알기 위해서는 동서로마의 분리와 성상파괴운동에 대해서도 알아보아야 한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로마의 52대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와 교회의 자유를 공포했다.

어떤 위협이나 사기 등을 통해 지불이나 대가 없이 몰수한 그리스도교인들의 재산은 모두 돌려줄 것이요...

당시 그리스도교인들이 박해를 받았던 것은 이 문장으로 이해된다. 자신의 재산권을 인정받지도 못하던 그들이 공동체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부여한 자유는 황제 자신의 지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행한 것이기도 했다. 동시에 제국으로 발전한 로마 내에 있었던 다양한 종교를 가진 이민족과 용병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에 유일신교인 기독교는 다양한 지도자가 난립했던 세계에서 하나의 황제가 군림하는 새로운 로마에 쉽게 동기화되었다. 황제는 스스로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던 세력을 포용하여 지지하게 만드는 훌륭한 정치적 지도자임을 증명했다. 교회에서는 그를 교회세력을 확장하고 그리스도교인의 안녕을 보장해 주기 위해 "신께서 보낸 사람" (Constantinus)이라 추앙했다.


교리논쟁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난 후 해결해야 할 일은 교회 내의 교리논쟁을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교회는 교구 간의 갈등이 있었는데 기원후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비롯한 이단을 단죄하는 니케아 신경 (Symbolum Nicaenum)을 발표함으로써 일단락된다. 이후 381년 한 번의 개정을 거쳐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발표한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공의회의 개최를 도왔고 개막연설을 맡았다. 이 논쟁의 결과로 성삼위일체 (trinitas)가 정설로 굳어졌다.

삼위일체는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 같은 위격을 지닌다는 의미로 이후 종교화 (기독교)에서 손가락 세 개를 만드는 포즈는 이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세 개의 이름을 가진 도시

콘스탄티누스의 또 다른 업적은 로마의 새로운 수도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이 도시를 그의 이름을 딴 새로운 로마 (nova roma constantinopoliana)로 명명했다. 여기에서 나온 이름이 "콘스탄티노플"이고 이 도시를 '그 도시'라고 부르는 이름이 "이스탄불"이다. 로마 이전에 이 도시는 비잔티온 (라틴어로는 비잔티움)이라 불렸는데 메가라의 왕자인 뷔자스 (Byzas)는 장자가 아닌 관계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신탁을 받는다. 델피의 신탁은 "눈먼 자들의 도시의 반대편에 도시를 세우라"였다. 당시 눈먼 자들의 도시로 알려진 칼케돈을 마르마라해협 건너 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비잔티온'을 세웠다.

이 도시는 오랜 시간 동안 이슬람을 막아냈다. 긴 전쟁 기간 동안 이 도시는 수많은 피난민과 용병, 상인들이 오가게 되었고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게 되었다.

이스탄불의 복원도를 보면 로마 도시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우측 아래편의 길쭉한 히포드로모스는 엄청난 규모로 당시 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거주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한 때 이 도시에는 40만 명의 사람들이 살았고 엄청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수도교 역시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히포드로모스 뒤쪽 오른편에 거대한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이 '하기아 소피아' (혹은 아야 소피아)라 불리는 '성스러운 지혜'의 건물이다.

아야 소피아는 532년에서 537년 사이에 지어진 건물로 로마의 판테온의 '돔구조'를 떠올리면 구조적으로 어떠한 창의성이 발휘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 건물을 만들기 위해서 건축가는 새로운 구조체를 상상해야 했다. 단순히 돔의 크기를 키우지 않고 높은 무주 공간을 만드는 요구를 받고 그는 아랫단을 사각형의 평면으로 쌓고 그 위에 반구형의 구조체를 올린 다음 반구형의 네 면을 잘라내고 거기에 사 반구를 붙였다. 그리고 가운데 반구의 윗부분을 도려내고 도려낸 단면의 지름을 갖는 반구를 쌓아 올리면 새로운 구조체인 '펜덴티브' (pendentive)가 완성된다.

펜덴티브 구조

이 건물의 남서쪽 입구는 커다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가운데 위치한 성모와 성모에게 안겨있는 아기예수, 그 왼편과 오른편에는 그리스도에 봉헌하는 교회와 도시의 건립자가 위치한다. 성모의 왼편과 오른편 뒤쪽에는 두 쌍의 이니셜이 보이는데 왼편은 mater '어머니'라고 쓰여있고, 오른편은 dei '신의'라고 쓰여 '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킨다. 마리아의 왼편 (우리가 보기에 오른편)에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두 손으로 봉헌하는 도시의 건립자 콘스탄티누스가 보인다. 그리고 마리아의 오른편에는 아야 소피아의 건립자 유스티아누스가 있다. 모자이크의 모든 인물의 뒤로 둥그런 띠가 보이는데 이것은 님부스 (Nimbus)로 라틴어로 '어두운 구름'을 뜻하고 그리스어로는 'halos'이다. 성인 (saints) 반열에 오른 인물들을 알려주는 이콘 (icon)이다.


이콘 (icon) 

이콘은 일종의 '약속'이다. 그림을 그린 사람들과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암묵적 약속은 성경의 내용을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도상학이라 불리는 이코노그라피 (iconography)는 이콘에 대한 내용을 판정하고 해석하는 것을 연구과제로 삼는 미술사의 한 분과이다. 이콘(icon)은 그리스어의 에이콘 (eikon) 즉, 그림, 이미지, 상을 의미한다. 이것을 잘 설명하는 것이 성녀 베로니카의 일화이다.

<수건을 들고 있는 베로니카>, 한스 멤링, 1470-75

면류관을 쓰고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의 얼굴은 피와 땀 그리고 각종 이물질로 뒤덮였다. 예수의 고난길을 눈물로 바라보던 베로니카는 수건을 꺼내어 예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수건에는 예수의 고난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진리의'를 뜻하는 vera (진리는 veritas)와 상을 뜻하는 'icon'의 합성인 veronica이다. 예수의 얼굴이 찍힌 이콘인 이 수건과 예수의 관계는 어떤가? 수건이 예수 그 자체라 볼 수 있을까? 수건을 예수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건을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은 있을지도 모른다. 때론 수건을 숭배하여 수건 자체에 신성이 있는 듯이 수건에 기도하고 수건 자체를 숭배하는 것은 올바른 믿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것을 '우상숭배'로 보고 나아가 극단적으로 신을 기리는 모든 물품을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난다.


'성상파괴운동'

서로마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잉글랜드의 이교도를 만나고 충격을 받는다. 그들은 외형이 아니라 내면이 비어있음으로 이교도가 되었음을 깨닫고 잉글랜드로의 선교를 결정하게 된다. 외형이 그 자신과 너무나도 비슷한 이교도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던 모양이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많은 이들을 만나는 선교를 통해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의 선교를 위한 방안의 필요성을 통감한다. 그는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시각예술이 문맹인들에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리스도교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지를 깨닫고 예술적 표현을 지지한다.

그레고리우스에 대한 그림을 보면 각종 성상들이 많이 보인다. 심지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예수상이 눈에 띈다.

반면 동로마의 레오 3세는 '성상파괴령'을 지시한다. 그의 이유는 단순한 분노나 변심 때문은 아니다. 그도 나름의 정치적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성상파괴령 (726)의 이유

1. 잦은 외부의 침입으로 피난민, 이민족, 용병 등의 유입. 사회적 혼란 발생 -> 구심점이 될만한 국가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

2. 정교일치가 무너진 상황에서 교회세력에 대한 신학적 공격으로 영향력 발휘

3. 성상 옹호주의자 (네스토리우스파)들을 이단으로 몰아 재산 몰수, 국가 재정 확보

레오 3세가 재위하던 시기의 상황을 살펴본다면 잦은 전쟁에 의해 와해의 위치에 처한 공동체의 수복과 전쟁을 치르기 위한 재정의 확보가 시급했다. 이를 위해 발휘한 그의 탁월한 정치력은 또 다른 신학적 논쟁을 일으켜 교회권력을 분열시켰고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성상파괴령'은 이후 787년 성상 표현을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이후 100년간은 공공연히 자행되어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되었다.


비잔틴 미술의 특징

비잔틴 미술은 이전 미술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은 부분과 퇴색한 부분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

<옥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예수>, 1280년경

위의 그림을 보면 마리아와 아기예수가 입고 있는 옷의 복잡한 주름이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온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옥좌는 3차원적 입체감을 드러내고 있고, 성모의 무릎은 빛의 효과를 드러내기 위한 기법을 사용했다. 성모의 얼굴은 음영이 드리워져 입체감을 준다. 이러한 부분들은 이 시대의 예술가들이 재현의 기술을 일부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경직된 자세와 굳은 표정은 이전 시대의 예술가들의 그것을 이어가지 못했다. 한편 마리아와 아기예수 뒤편의 후광은 새로운 요소로 등장했다.

일련의 성모와 아기예수의 그림들을 보면 공통된 도식이 보인다. 왼편의 마리아와 오른편의 아기예수, 마리아는 아기예수를 안고 있을 것, 두 인물의 뒤편에는 님부스를 그릴 것. 고대 이집트의 미술과 같이 이 시기의 미술가들은 일종의 공식화된 표현들을 만들어 내었다.

또 다른 이콘을 소개하자면 '세계의 지배자 그리스도' (pantocrator)이다. 모든 것을 뜻하는 pan + 창조자/지배자 crator의 합성어이다.

몬레알레 성당의 모자이크, 팔레르모, 12-13세기

예수의 손 모양은 접은 손가락을 기준으로 숫자 3을 만든다. 삼위일체이다. 손가락이 접은 모양이든 편 모양이든 3이 보이면 삼위일체로 보는 것이다. 왼편과 오른편의 그리스어 알파벳은 IC / XC로 라틴어로는 IS / CHS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IESUS CHRISTUS)를 뜻한다.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그림이 말하는 약속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가장 아래의 <그리스도 판토크라토어>의 양쪽 어깨에 보이는 AW는 알파와 오메가를 뜻하는데 그리스도가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라고 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창조주이자 심판자인 그가 세계의 시작점이자 종착지임을 알려준다. 그의 왼손에 들려진 책에 쓰인 문구는 <EGO SUM LUX MUNDI> (나는 세상의 빛이다)이다.


모자이크

비잔틴 미술의 또 하나의 특징은 모자이크를 자주 이용한다는 점이다. 모자이크는 조각난 재료를 이용하여 전체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다양한 장점을 지니는데 다양한 재료와 색채를 이용하여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줄 수 있다. 훼손된 부분을 보수할 경우에도 용이하다. 부분을 떼어내고 같은 타일을 붙이기만 하면 감쪽같이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자이크는 해석학적으로 볼 때 더욱 매력적이다. 개별 모자이크 조각은 의미 없는 색채의 파편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모이면 거대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마치 신이 우리에게 어떠한 임무를 부여했으나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러한 무지 상태의 우리가 모여 세계라는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역사라는 책을 써나가는 것이다. 모더니즘의 시초에서 점묘법이 대도시에서의 익명의 인간군집이 나타내는 속성과도 비슷하다.

산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

거대한 모자이크의 벽은 멀리서 볼 때 선명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흐려지고 불완전해 보인다. 숲에서는 숲의 모양을 알 수 없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꼬집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동서교회의 분리는 정치적 이유와 교리의 문제로 발생하고 굳어졌으나 분리는 또 다른 성장을 촉발했다. 동서로마의 분열은 우리에게 '비잔틴 미술'이라는 독특한 감상거리를 제공했다.

Varietas delectat
(변화는 즐겁다)

- 이솝 우화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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