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 2편
작가는 세계를 정보가 아닌 해석의 장이라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정보 자체가 가진 의미를 되새긴다. 디지털 세계에서 정보는 0과 1로 이루어지며 이것은 있음과 없음을 의미한다. 있음을 빛이라고 한다면 없음은 어둠 혹은 그림자를 뜻한다. 이 둘은 어느 하나가 아닌 쌍으로 온전해진다.
빛은 하나의 원천 혹은 기원에서 발산한다.... 빛과 어둠은 동일한 원천에서 나온 것이다.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다닌다. 선의 정립은 곧 악의 정립이기도 하다. - <투명사회>, 한병철, 82쪽 -
성경의 창세기는 '빛의 있음'과 함께 시작한다. 태초에는 혼돈이 있었고, 빛이 있음과 함께 질서가 정립되었다. 빛이 생겨난 이후의 어둠과 빛이 생겨나기 이전의 어둠은 다르다. 빛 이전의 상태는 혼돈으로 밝음과 어둠의 구분이 없었다. 창세기 1장 3절에서 5절의 내용을 보면 신이 세계를 창조함에 있어서 어둠을 제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절: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절: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만약 창조주가 빛의 있음만을 마음에 들어 했다면, 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이 창조한 것은 빛만이 아니라 빛을 통해 생겨나는 밝음과 어둠의 반복, 그리고 그것이 하루라는 주기로 반복되는 질서이다. 혼돈, 즉 무질서는 새로운 질서를 위한 재정리의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혼돈의 상태의 무한한 지속은 기준의 상실을 의미한다. 기준의 상실은 무제한의 융통성, 선과 악의 도덕적 판단의 상실을 의미하고, 공동체에서의 객관성의 상실을 뜻한다.
정보는 인간의 언어를 세운다. 하이데거는 "세움"을 지배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 그렇다면 세우다 stellen라는 말이 들어간 단어, 즉 주문하다 bestellen, 상상하다 vorstellen, 제작하다 herstellen와 같은 표현들은 권력과 지배의 비유가 된다. - <투명사회>, 한병철, 83쪽 -
정보는 단순한 데이터와는 다르다. 습도, 온도, 풍속 등의 기본 데이터는 현재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만, 정보는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가공된 자료를 뜻한다. 일기예보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정보이다. 따라서 정보는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물론 정보에는 오류의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 오류를 제거하고 싶다면 어마어마한 데이터에 의존하면 된다. 물론 빅데이터('정보의 무더기')가 정확한 정보로 이어질 수 있기도 하지만 빅데이터는 현재의 상황 혹은 현재에 대한 인식을 보여줄 뿐 미래에 대한 어떠한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데이터가 미래지향성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일정한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실수와 실패라는 쓰라린 가능성을 포함한 것이 정보이다. 따라서 정보를 만드는 자는 용기를 가진 자다. 용기를 갖고 스스로의 땅에 의지를 세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획을 세우고(상상), 재료(주문)와 행위(제작)를 통해 의지의 건물을 세운다.
건축가는 벽과 기둥을 통해 빛의 경로를 만들어낸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1941-)는 오사카의 이바라키 시에 교회를 지었고, 이 건물은 "빛의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건물에는 기존 교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다. 건축가는 성스러운 십자가를 더욱 근원적인 방식으로 '세우기'로 결심한다. 두꺼운 노출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공간은 날카롭게 잘려나간 한쪽 벽의 틈을 통해 십자가로 채워진다. 건축가는 빛과 어둠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상징인 십자가를 빛으로 그려냈다. 벽면으로 흘러내리는 빛의 연장선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십자가로 시선을 인도한다.
제 모든 작품에서 빛은 중요한 제어 요소입니다. 저는 주로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사용하여 밀폐된 공간을 만듭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 사회 안에서 자신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도시 환경의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벽에 개구부가 없어야 할 때, 내부는 특히 충만하고 만족스럽게 채워져야 합니다… 때때로 벽은 폭력에 가까운 힘을 발휘합니다. 공간을 나누고, 장소를 변형하고,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는 힘을 지닙니다. 벽은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지만, 동시에 가장 풍요로운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안도 다다오 -
건축가는 어둠을 만들어내는 벽을 통해 빛의 경로와 공간의 질서를 결정한다. 빛이 밝을수록 어둠은 어두워지고, 십자가는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시간이 흘러 어둠의 지배하는 순간이 오면 이 건축물의 바깥으로 내부의 빛의 십자가가 번져나갈 것이다. 정적인 비례로 만들어진 건축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건축은 변화하는 시간의 빛을 공간 속에서 음악처럼 연주한다.
Architektur ist gefrorene Musik.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