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창백한 범죄자'가 말하는 망상을 극복하기 위해 '피'를 제시합니다. 읽고 쓰는 인간의 역사적 과정은 정신만의 성과가 아닌 육체와 피를 통한 고통과 극복의 과정입니다.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니체는 유물론(Materialismus)적인 태도로 인류와 역사를 바라봅니다.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추상적인 정신이 아니라 생명력을 가진 물질적 존재에 의해서라는 입장입니다. 플라톤에서 중세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육체를 죄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비판하고 오히려 정신을 강조하는 사상이 변질되어 가는 것을 지적합니다.
한때는 넋이 신이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사람이 되더니 지금은 심지어 천민이 되어가고 있으니.
또한 한때 위대한 정신은 육체와 물질세계의 원인을 밝혀주며 서로 공존했지만 이제는 타인을 지배하는 변명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지식과 지혜를 독점하여 지배층의 권력을 강화하고 천민보다 더욱 천민과 같이 정신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정신은 육체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웠고, 중력의 지배 아래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도록 구속합니다. 타락한 정신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내 발아래 있는 이 구름, 내가 비웃고 있는 이 어둡고 무거운 것. 그것이 바로 뇌우를 가져오는 구름이렷다.
너희 가운데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높이 올라와 있을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차라투스트라는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웃음을 잃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무거운 중력의 힘을 버티고 타인보다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해 갖은 고난을 이겨낸 후 승리자의 얼굴에 남아있어야 할 것은 고난의 흔적이 아니라 웃음입니다.
너희는 말한다.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라고. 그러나 너희는 어찌하여 오전에 긍지를 갖다가도 저녁에 이르러서는 체념하는 것이지?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 그러나 그토록 연약한 언동을 삼가라! 우리 모두는 짐깨나 질 수 있는 귀여운 암수 나귀이니.
하지만 사람들은 견뎌내기 힘든 삶의 무게만 이야기하며 새로운 시작의 열정만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 열정은 체념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마땅히 그러하다는 듯 위로합니다. 그렇게 수많은 이전 세대의 체념자들의 충고를 들으며 자신의 체념을 수긍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또 다음 세대에게 시도와 도전의 경험이 아닌 체념의 수용에 대한 기술을 전수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삶은 견뎌내기 힘들다"는 말이 체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명제로 쓰이는 것을 비판합니다. 실패와 체념은 엄연히 다릅니다. 실패는 또 다른 성공을 위한 시도의 잠정적 결과일 뿐입니다. 하지만 실패라는 마침표를 찍지 않은 어설픈 중단은 체념입니다. 체념은 "연약한" 태도이며, 스스로의 한계를 낮출 뿐입니다. 사실 우리는 꽤나 큰 시련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이성은 실패에 대한 예단으로 시련을 견디기 힘들게 만듭니다.
그런데 나의 악마를 보는 순간 나 그가 엄숙하며, 철저하고, 심오하며 당당하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중력의 정령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모든 사물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지.
사람들은 노여움이 아니라 웃음으로써 살해를 한다. 자, 저 중력의 정령을 죽여 없애도록 하자!
차라투스트라가 "중력의 정령"이라고 비유하는 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추락의 공포로 몰아넣으며 시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타인들의 평가에 대한 걱정 등은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환상을 통해 상승의지를 꺾어 버립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실패에 대한 경험을 하나의 즐거운 에피소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입니다. 단 한 번의 성공의 과정이 아닌 수많은 어리석은 실패의 경험을 통한 기적과도 같은 성공의 실화는 대다수의 실패를 긍정할 수 있게 합니다. 성공을 위한 실패에 대한 긍정은 수많은 실패에도 웃음으로 대항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최고의 장인 다이달로스가 밀랍으로 고정한 날개로 하늘을 비행합니다.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날아 태양 가까이에 이르러 밀랍이 녹고 날개를 잃어 추락하고 맙니다. 피터 브뢰헬은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에서 이카루스의 추락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혹은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하는 농부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누군가의 시도와 실패는 다른 이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실패가 마치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운명과 같다고 하는 우울감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이들은 각자의 비극을 겪고 있으며, 그것은 자신만이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태양 근처까지 이르렀던 이카루스의 실패가 없었다면 어느 지점이 '터닝 포인트'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실패는 모두를 위한 지침과 경고의 기준이 되며, 그것을 극복하려는 또 다른 시도를 만들어냅니다. 한 사람의 실패는 인류의 성공을 위한 첫걸음이고, 우리는 그의 실패가 최초의 시도이자 성공 직전의 과정이었음을 웃음으로 긍정하게 됩니다. 웃음으로 "중력의 정령"을 물리치고 모두가 자신의 날개로 훨훨 날기를 차라투스트라는 바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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