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소유
경계는 '나'와 '너', '우리'와 '그들', '이곳'과 '저곳'을 나눈다. 경계는 단순히 시선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소유'의 개념을 공간적으로 구분 짓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소유는 신체, 소유물, 집과 같은 형태로 공간화되며, 사회적 차원에서의 소유 혹은 소속은 구성원, 동산, 부동산 혹은 영토와 같은 형태로 공간화된다. 경계의 투명화는 얼핏 소유의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공유' 개념처럼 인식될 수 있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계의 투명화는 소유의 명확한 시각화를 의미한다.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닌 투명화하는 것은 어떤 것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비공간적 방법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한다. 산업혁명의 원동력으로 작동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농업혁명이었다. 1700년대 이전 영국의 농부들은 소위 '공유지(common land)'에 작물을 심고 가축들은 공동으로 관리했다. 1700년대에 영국 의회가 '인클로저 법(Enclosure Acts)'을 통과시키면서 대규모 공유지에 울타리를 둘러 사유지로 바뀌어갔다. 부유한 농부들은 대농으로 성장하며 거대한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땅을 잃은 농부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대도시의 공장으로 떠나갔다. 대규모 농장의 소유는 자연적 경계와 같은 명확한 구분이 아닌 행정적 등기에 의해 투명하게 확정된다. 일부 학자들이 지적하듯 인클로저 운동은 현대 자본주의의 출현으로 간주되기도 하며, 중세 농민 공동체의 파괴를 본질적으로 완료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거대한 자본의 손은 현대전의 로켓과 같이 경계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누구든 땅의 소유를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이 보장되어 있지만, 그 소유는 공간적인 확정이 아닌 법적인 영역에서 서류로 존재하며 그 가치는 사용자의 경험과 삶이 아닌 자본이라는 숫자로 가치가 매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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