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mo ludens May 31. 2024

사랑, 넘침과 모자람의 사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대한 해석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20세기 초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길은 그들 주변을 맴도는 구경꾼이다. 그를 동행하며 당시 예술가들의 주변을 가장 활발하게 구경하던 것은 피카소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아드리아나이다. 그녀에 대한 피카소의 시선은 거트루드 슈타인과 충돌하며 예술관의 차이를 보인다. 사람을 그리는 인물화와 사물을 그리는 정물화는 대상의 본질과 형태의 관계만큼이나 철학적 담론의 주제이기도 하다. 대상에 대한 주체의 관점과 일반적 관점이라는 대립하는 재현의 문제에 대한 둘의 대립은 20세기 초반 예술이 자본과 맺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입장의 차이이기도 하다.


뮤즈

아드리아나는 피카소의 예술욕망을 자극하는 여인이다.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사람을 일컫는 ‘뮤즈(muse)‘는 음악과 예술의 신 아폴론(Apollon)의 아홉 명의 딸들이다. 음악이 뮤직(music)이라는 단어류 표현되는 것은 뮤즈에 기인한다.

<파르나스>, 라파엘 산초, 라파엘의 방, 1509-11

로마 바티칸 궁전에는 라파엘의 방이라 불리는 네 개의 방이 있다. 그 가운데 교황이 서명을 하던 방 '스탄짜 델라 세냐투라(Stanza della Segnatura)'에는 라파엘이 네 개의 주제 철학, 신학, 예술 법을 각 네 면의 벽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 넣었다. 예술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파르나스>는 가운데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인물, 즉 파르나소스 산의 주인 아폴론이 중심에 있다. 그 주변에 아홉의 뮤즈가 그를 둘러싸고 있다. 그녀들은 악기와 가면 등의 음악 및 예술과 관련된 상징물을 가지고 있다. 뮤즈와 아폴론 이외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도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아폴론의 왼쪽 편에 푸른 옷을 입고 눈을 감고 하늘을 바라보는 인물은 그 유명한 호메로스다. 호메로스의 왼편에 붉은 옷을 입은 인물은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이고 오른편의 녹색 옷을 입은 인물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다. 또한 최초의 여성 예술가라 알려진 기원전 7세기의 사포가 그림의 왼편 가장 앞쪽에 푸른 옷을 입고 앉아있다. 이외에도 라파엘의 당대 혹은 직전 시대의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와 보카치오 등도 예술에 접근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림에 등장한다.

예술의 신 아폴론을 보좌하는 뮤즈들은 이후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인식된다. 근대 예술가들에게는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를 직접 연관 짓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퍼져나갔고 대표적으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에게는 젊은 부인 알마 말러가, 쇼팽에게는 조르주 상드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는 루 살로메가 그들의 창작활동을 자극했다고 알려져 있다.

왼쪽: 루 살로메와 릴케, 오른편: 루 살로메와 파울 레 그리고 니체

뮤즈이자 팜므파탈로 유명한 루 살로메는 14살 연하의 릴케와 연인 관계를 맺으며 릴케가 시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릴케의 이름은 원래 르네-마리아 릴케(René Karl Wilhelm Johann Josef Maria Rilke)였는데 루 살로메가 남자 시인의 이름이 너무 여성스럽다며 라이너로 바꾸길 제안했고 그는 라이너-마리아 릴케로 바꾼다. 이름을 바꾼 것은 단순히 남성다운 시인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어머니와 결별하고 또 다른 자아를 찾아 나서는 의미가 있다. 릴케의 어머니는 생후 1개월 만에 죽은 릴케의 누이에 대한 슬픔으로 둘째 릴케의 이름을 르네(René)로 지었다. 르네는 프랑스어로 '다시 태어난'이란 뜻으로 죽은 누이에 대한 환생의 의미로 릴케를 키우고자 했고 릴케의 어린 시절 사진에 고스란히 이 염원이 드러난다. 

릴케의 어린 시절 1877/78 (2,3살 시기)

1897년 5월 12일 뮌헨에서 처음 만난 지적인 여인 루 살로메에게 사랑에 빠진 릴케는 1900년까지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결별 이후에도 그녀를 중요한 친구이자 조언자로 여겼고 이에 대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루 살로메)는 삶에서 기댈 데 없는 시인 릴케에게 뮤즈이자 세심한 어머니와 같았다."


이렇듯 예술가에게 뮤즈는 삶에 대한 태도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적어도 작가 자신에게 스스로를 부정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자극이 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루 살로메는 17살 연상의 니체와 그의 친구 파울 레와 동시에 연인 관계를 맺었다. 수레 앞에 선 두 남자 중 유명한 코수염의 남자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이고 그 왼편이 철학자이자 의사인 파울 레(Paul Reé)이다. 왼편에서 채찍을 들고 있는 여인이 루 살로메인데 그녀는 이 사진에 대해 스스로 "삼위일체(Dreieinigkeit)"라 불렀다. 그녀는 최고의 지성을 지닌 셋은 독점적 소유욕에서 벗어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랑의 이상적 형태'를 꿈꿨으나 두 남자의 질투심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했다. 니체는 이 시기를 굉장히 견디기 힘들어했다. 이러한 관계는 당시의 도덕적 관념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니체 스스로도 스스로의 독점적 사랑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의 친구와 그녀와의 관계를 절연하고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 이후 그는 그녀 여동생 엘리자베스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고 있다고 시인하지만 그가 당시 겪었던 고통은 그가 남긴 편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매일 아침 나는 내가 오늘을 견딜 수 있을지 의심한다... 오늘 밤 나는 이성을 잃기 위해 많은 아편을 할 것이다: 사람들이 칭송하던 그 인간은 어디 있는가!"


그는 이성이 그에게 주는 참혹한 고통을 인식했고 그의 철학에는 고스란히 이성에 대한 비판이 녹아있다. 그녀와의 지적인 교류의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 독점적 소유욕을 버린 순수한 이성적 관계가 눈앞에 있으나 그것을 행하기에 인간은 이성보다 더 무거운 욕망의 추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이성은 끊임없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를 고문했고 그것을 견디기 힘들었던 니체에게는 '이성으로부터의 탈출'이 필요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실제로 7명의 연인 혹은 뮤즈가 그의 작품 활동에 진한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드리아나는 가상의 인물로 영화에서 피카소의 연인으로 등장하는데 주인공 길 펜더는 첫눈에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헤밍웨이조차 그녀에게 눈길을 준다. 이후 헤밍웨이는 그녀와 아프리카로 여행을 다녀온다. 그녀는 넌지시 화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와의 염분설도 흘린다. 여러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그녀는 뮤즈이자 팜므파탈(femme fatale)이라고 볼 수 있다. '팜므파탈'은 기구한 운명의 여성이라는 뜻인데 그녀의 아름다움 혹은 매력이 주변의 남성들을 매혹하여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여성을 말한다. 그녀가 이러한 비극을 의도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치 않다. 죄가 있다면 그녀의 매력과 그것을 독점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소유욕에 책임이 있다. 예술을 독점적 소유욕과 그것을 충복하기 힘든 현실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감성의 오르내림, 즉 과잉과 결핍의 감정에서 발생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풍요과 결핍을 상징하는 두 신 포로스와 페니아의 슬하에 자녀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에로스다.


사랑, 넘침과 모자람 사이

<amor vincit monia(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카라바조, 1602

에로스의 탄생과 관련한 여러 가지 설 가운데 하나인 풍요(포로스, Poros)와 결핍(페니아, Penia)의 자식이라는 설은 사랑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우리의 사랑은 늘 모자람과 넘침을 오간다. 안정적 사랑은 모자람에서 넘침으로의 과정에 있는 것이고, 따라서 사랑의 시작은 채워짐이 느껴지는 북받침이다. 먼저 채워진 사랑은 넘침으로 변하고 자신이 받는 사랑이 부담되고 싫증이 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넘침과 모자람을 반복한 이들 가운데 몇몇에게는 ‘균형‘의 상태가 찾아오는데 이것이 ’ 조화로운 상태(harmonia)‘이다. 조화는 정지가 아니며 넘침과 모자람 사이의 긴장상태이기 때문에 안정적이나 정지하지 않고 변화하나 깨어지지 않는다. 에로스와 하모니아는 남매관계이며 상호보완적 관계로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든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Amor vincit omnia)>에서 사랑(아모르 혹은 에로스)이 상대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인 동시에 디오니소스의 추종자(pan)이기도 하다. 라틴어 omnium 은 '모든'이라는 뜻으로 그리스어로는 pan이다. 따라서 베르길리우스의 말을 그리스어로 바꾸면 "에로스의 판에 대한 승리"로 해석할 수 있다.

<아프로디테, 에로스 그리고 판>,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기원전 1세기 경

판(pan)은 즐거움과 쾌락,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신화적 상징인데 에로스(eros)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쾌락적, 즐거움의 측면을 일부 공유한다. 하지만 에로스가 판을 이기는 순간 이 사랑은 육체적 쾌락과 일시적 즐거움을 능가한 사랑을 의미하게 된다. 이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과는 다르며 정신적인 사랑을 뜻하는 플로토닉적 사랑과 유사하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각종 음악과 예술의 상징 위에 앉아있는 아모르는 정신적 쾌락을 의미하는 예술에 대한 지적 사랑을 의미한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품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영감을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뮤즈는 이 불안을 잊게 해주는 빛이었고 이 빛이 사그라들 것 같으면 다른 뮤즈를 찾아 대체하는 이들도 많았다. 예술가들은 뮤즈를 통해 예술적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는데 육체적 미의 진리에 도달하려는 경우와 지적 대화를 통해 미의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돕는 경우 혹은 미스터리 한 분위기로 설명할 수 없는 진리의 오묘함을 전달하는 등의 다양한 접근 방식이 시도된다. 아프로디테, 판 그리고 에로스는 각자가 사랑과 관련된 부분을 맡는 신들이고 이 가운데 에로스는 미 자체로서의 사랑인 아프로디테와 육체적 쾌락을 대변하는 판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육체적 사랑의 넘침과 모자람, 미적 쾌감에 대한 이끌림과 지루함 모두를 포함한 속성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아드리아나는 피카소의 '뮤즈'로 등장한다. 실제 피카소가 1928년 그린 작품 <공을 가진 물놀이하는 여인>은 영화 속에서 아드리아나를 그린 것으로 설정된다. 여기서 피카소와 거트루드 슈타인의 견해 차이가 발생하는데 슈타인과 피카소의 차이는 정물화와 초상화에 대한 견해 차이로 드러난다. 과연 '뮤즈'는 예술가의 눈요깃거리로 하나의 정물, 즉 멈춰있는 사물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예술가만이 뮤즈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을 우리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일까? 뮤즈와 예술가의 관계는 에로스의 사랑과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넘치거나 부족함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사랑을 주고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랑 이후에 남겨진 것들로 재평가되기 때문이다. 니체는 '사랑 이후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다. 이러한 자기애를 '극복'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니체의 자신에 대한 사랑은 '자신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내는 일, 즉 예술적 창조와 다름없다.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사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냈는가? 지금까지 존재해 온 모든 것들은 자신 이상의 것을 창조해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이 거대한 밀물을 맞이하여 썰물이 되기를 원하며 사람을 극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짐승으로 되돌아가려 하는가?

다음 주에는 슈타인과 피카소의 견해 차이에 드러나는 미술에서의 정물화와 인물화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중심으로 전개해 보겠습니다.

이전 10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