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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May 24. 2024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대한 해석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나누는 다양한 주제 가운데 영화의 중심을 관통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가장 높은 가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우디 앨런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사랑'은 어떤 것일까?


보편적인 너무나도 보편적인...

영화에서 가장 특이한 인물 중 하나는 가수 콜 포터(Cole Porter)이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Let's do it, let's fall in love" (합시다, 사랑에 빠집시다!)이다. 이 곡은 1928년 만들어져, 동해 뮤지컬 '파리'에 수록되어 브로드웨이에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포터는 이 곡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것을 노래한다.


“사랑에 빠져요. 스페인에선 상류층이 하고

리투아니아인과 라트비아인도하죠. 우리도 사랑합시다.

옛 암스테르담 사람들도 하고 핀란드인은 물론

샴사람들도 하죠. 샴쌍둥일 봐요.

돈 없는 아르헨티나인도 하고 보스턴에선 콩들도 한다는데

사랑합시다. 사랑에 빠져요.

로맨틱한 해면동물도 한다고 하고 굴들도 하죠

사랑합시다. 사랑에 빠져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1. 지역과 문화권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는 사랑: 상류층 스페인 사람, 리투아니아인과 라트비아인, 옛 암스테르담 사람들과 핀란드인

2. 부와 신체적 조건을 초월해 존재하는 사랑: 돈 없는 아르헨티나인, 샴쌍둥이

3. 인간이 아닌 생명체에게도 존재하는 사랑: 로맨틱한 해면동물, 게으른 해파리, 전기뱀장어, 굴, 콩


포터의 노래는 보편성을 인간이 가져야 할 소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보편성은 생명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것, 최소한의 자격조건이 아니라 모두에게 부여된 것이다. 올바른 사랑, 더 나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하는 것, 어느 순간 우리가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에도 이미 하고 있는 것, 인식하지 않아도 숨을 쉬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주 가끔은 헐떡일 정도로 격정적인 사랑의 순간도 있지만 그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포터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사랑은 너무 특별한 것이 아니니 그것을 하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플라톤에서 기독교 철학에 이르기까지 보편성은 불편의 진리이자 감각 세계를 초월한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데아는 보편 그 자체이자 보편자들이 생겨난 곳이고, 그리스도는 보편 그 자체이자 보편자가 뛰놀던 에덴동산의 주인이다. 이데아를 인식하거나 에덴동산으로 회귀하는 방법은 이성 혹은 신앙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그것은 소수에게만 허용된 특권과도 같다. 이와 반대로 니체는 절대적 진리 체계 자체에 반기를 들고 진리 혹은 도덕의 상대성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보편성은 힘에의 의지를 통해 관철된 현재의 잠정적 상태일 뿐이다. 이러한 절대적 진리의 환상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기준이 되어 도덕과 진리의 주인이 된 자를 '위버멘쉬(Übermensch)'라고 한다. 니체는 '위버멘쉬'는 모두에게 가능한 동시에 누구도 가능하지 않은 상태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의 부제는 <Ein Buch für Alle und Keinen>으로 번역하면 "모두를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하나의 책"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1883

니체의 귀로 콜 포터의 음악을 들어 본다면 사랑은 '보편적인 너무나 보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니체의 작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Menschlich allzu Menschliches>은 반복된 '인간적인'을 통해 진정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 것이다. 니체는 인간이 만든 단순화된 '인간적인', 즉 육체적, 감정적 욕망의 부분을 제거한 반쪽짜리 인간에게 배제된 인간의 이기심, 지배욕 그리고 성욕 모두를 긍정하고 포괄하는 진정한 '인간적인' 인간을 추구한다. 무조건적이고 이타적인 아가페적 사랑과 육체적인 욕망과 소유의 에로스적 사랑을 모두 가진 인간에 대한 긍정은 인간을 보다 '인간적인' 존재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콜 포터의 노래 역시 사랑의 '보편적인 너무나 보편적인' 특징을 잘 그리고 있다.


중심의 상실과 나르키소스

20세기가 직면한 많은 일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전쟁이다. 전쟁은 서로를 의심하고, 미워하며,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게 한다고 느끼게 한다.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잔혹함은 사랑을 예외적 상황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대도시에 모인 대중 속에서 서로 관찰하고 관찰당하는 개인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는 '기준의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기준의 상실'은 개인과 집단의 관점 차이뿐 아니라 전통적 질서와 가치의 붕괴와 더불어 서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쳤으며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술사학자 한스 제들마이어(Hans Sedlmayr)는 예술에 있어서의 <중심의 상실(Verlust der Mitte)>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스캇과 젤다 핏츠제럴드의 관계에 대해 헤밍웨이는 젤다가 스캇의 창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헤밍웨이는 스캇 핏츠제럴드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알코올 중독과 젤다와의 관계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젤다가 겪는 정신적 불안은 이후 조현병으로 진행되었고 그녀는 이후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와 재활을 경험했다. 젊은 시절부터 주목받는 작가로서의 인생을 살던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인 스캇의 성공에 가리어진 그녀의 존재감은 자기애와 충돌하여 우울증과 자아도취라는 양극성이 강해졌다. 이러한 그녀의 나르시시즘적 성향은 끊임없는 자아 탐색과 창작 활동으로 이어졌고 그녀는 자신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나르키소스와 에코>,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903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와 에코의 만남은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을 볼 수 없는 나르키소스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에코는 '자기 인식'이 결여된 두 가지 모습이다. 처음 바라본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져 손을 뻗다 죽음을 맞이하는 나르키소스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사랑은 그 대상이 자신인 줄 모르기에 되돌려 받지 못하는 불가능한 사랑이라는 점이다. 그가 사랑했던 것은 자신이나 그것이 자신인 줄 모르는 중심이 결여된 인간이다. 한편 에코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몰라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는 자로 사랑하는 자를 만나도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상대의 말만 따라 하다 외면당하고 부끄러움에 산속으로 숨어들어 형체를 잃었다. 목소리만 남은 에코는 사라져서도 타인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자신의 중심을 가진 자,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자신의 작품이 '정직'하기 때문에 좋은 책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게 전쟁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짓'이라고 한다. 인간이 전쟁 속에서 죽어가는 덴 '훌륭함도 고상함'도 없기 때문에 유일한 인간의 품위는 '솔직함'에 있다고 여긴다. 여기서 '솔직함'은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을 의미한다. '~하는 척'은 헤밍웨이의 적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을 솔직히 대하지 못한다. 버림받을까 두려워 스스로를 과장하고 은폐한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상실하고 스스로를 마주하기를 꺼린다. 헤밍웨이는 스스로 앞에 선 자,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자이다.


길: 엄청난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헤밍웨이: 뭐지?

길: 읽어주시겠어요?

헤밍웨이: 당신 소설?

길: 네, 400쪽쯤 되는데... 누군가의 의견이 듣고 싶어서요.

헤밍웨이: 내 의견은 '싫다 라네.

길: 읽지도 않으셨잖아요.

헤밍웨이: 못썼으면 못써서 싫고 잘 썼으면 부러워서 더 싫겠지. 다른 작가 의견은 필요 없어.

길: 네, 그게 문제예요. 제 글에 대한 평가를 누구한테도 못 맡기겠어요.

헤밍웨이: 작가들은 경쟁심이 강하지.

길: 선생님 하곤 경쟁할 생각 없어요.

헤밍웨이: 자넨 너무 겸손해. 남자답지 않아. 작가라면 자신이 최고라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내가 있는 한은 안 되겠지만 억울하면 한판 붙든가.


헤밍웨이는 자신의 관점을 지닌 사람이다. 다른 이의 관점에 쉽게 동의해 줄 생각이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겁쟁이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중심을 가진 자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길은 헤밍웨이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헤밍웨이가 길에게 죽음이 두려우냐고 묻자 길은 '아마 가장 큰 두려움일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헤밍웨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솔직하다. 그리고 그 극복법을 알려준다.


헤밍웨이: (죽음이 두려운 것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누구에게나 그럴 거야.

길: 맞아요.

헤밍웨이: 정말 멋진 여자와 사랑해 봤나?

길: 사실 약혼녀가 엄청 섹시해요.

헤밍웨이: 그녀와 사랑을 나눌 땐 진실된 아름다운 열정을 느끼고 그 순간만큼은 죽음이 두렵지 않지?

길: 아뇨, 그렇진 않아요.

헤밍웨이: 진정한 사랑은 죽음을 잊게 만들지. 두려움은 사랑하지 않거나 제대로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다네.... 용감하고 진실한 사람이 죽음을 직시할 수 있는 건 열정적인 사랑으로 죽음을 맘 속에서 몰아내기 때문이야. 물론 두려움은 다시 찾아오지. 그럼 또 뜨거운 사랑을 해야 하고. 생각해 보게...


헤밍웨이와의 대화는 길이 자신의 약혼녀 이네즈를 진실로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아직 길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현재 그가 누리고 있는 안정감을 포기하지 못한다. 헤밍웨이는 진정한 사랑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회적이며 매 순간이 지나면 두려움은 다시 찾아오고 우리는 다시 진실한 사랑을 해야 한다. 이는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파티 (amor fati), 필연적인 것에 대한 인정, 즉 죽음을 인정하고 삶을 사랑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승리의 아모르>, 카라바조, 1602

카라바조가 그린 <승리의 아모르>의 부제는 "Amor vincit omnia"(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이다. 이 말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쓴 말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에 빠지게 하자!"의 일부이다. 콜 포터의 노래와 딱 들어맞는 이 말은 헤밍웨이의 사랑에 대한 생각과도 일치한다. 그림에서 사랑의 신 아모르는 각종 물건들 위에 걸터앉아 있다. 갑옷과 무기, 악기와 직각자, 지구본과 월계관 등 최고의 명예와 지식이라 불리는 모든 것 위에는 사랑이 있음을 베르길리우스가 말하고 콜 포터가 부르며 헤밍웨이가 쓰고 카라바조가 그린다.


사랑은 보편적인 너무나 보편적인 것,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모든 것의 위에 있는 것이다. 길은 아드리아나와의 키스 후 이렇게 말한다.


<키스하는 동안엔 내가 불멸의 존재 같았어요>


열정적인 사랑을 순간 우리는 자신을 잃고(무아) 영원을 받아들인다. 순간은 영원을 담는다. 그리고 영원은 순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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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은 여자 주인공 아드리아나와 피카소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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