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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Oct 20. 2024

<멋진 신세계> #2

3장. 만인은 만인의 것

[사회계약과 신세계]

<멋진 신세계>의 3장은 "만인은 만인의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는 자연상태에서의 혼란을 이야기한다. 홉스는 <리바이어던, 혹은 교회 및 세속적 공동체의 질료와 형상 및 권력> (1651)에서 구약성서의 욥기 41장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에 빗대어 국가를 설명한다.  

<리바이어던, 혹은 교회 및 세속적 공동체의 질료와 형상 및 권력>, 토마스 홉스, 1651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개별 인간이 모여 이루어진 거대한 인간으로 한 손에는 세속적 권력을 뜻하는 왕홀(scepter)과 다른 한 손에는 무력을 뜻하는 검을 들고 있다. 폭력에 대한 독점과 법적 정당성을 통한 초인격적 지배를 말한다. 그림의 하단부에서 대포가 향하고 있는 것은 오른편의 교회 권력이다. 홉스는 카톨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가 교단에 위임한 적 없는 세속에 대한 지배권을 교황과 사제가 행사하며 자신들을 법의 예외 영역에 두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국가는 자연적 권리를 군주에게 양도한 공민들에 의해 형성되며, 이는 자연 상태,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 계약"을 통해 공동체의 안정을 확보하고자 한다. 홉스의 "사회 계약설"은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개개인의 희생이 따르는 것을 용인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상은 "신세계"의 사상적 뿌리가 된다.


[자연과의 분리]

산업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신세계는 대량 생산을 감당할 수 있는 대량 소비를 의무화한다. 신세계가 완성되기 전 영국 의회는 "의무 소비제"에 반대했다. "의무 소비제"란 모든 시민이 의무적으로 일정한 소비를 해야 한다는 법이다. 대량 생산 사회의 적은 '청빈한 삶'이다. 


<소비를 부추기지도 못하는 경기를 허용하다니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이해가 되는가? … 곳곳에서 의무 소비제를 반대하는 양심선언이 터져 나왔다아무것도 소비하지 않겠다고들 했지자연으로 돌아가겠다나.>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발전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가져왔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에 적응해야 했고, 끈끈한 전통 사회의 인간관계와는 다른 개인의 소외문제가 대두되었다. 다른 한편 도시는 효율성을 기준으로 발전하여 빈 공간은 주거와 공장을 위해 채워져 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인격적 소외와 노동에서의 소외, 그리고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겪게 되었다. 이 거대한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본이 순환되어야 한다. 시민들은 서로의 소비가 서로의 수익으로 이어지는 연쇄고리로 묶여 있고, 누군가의 검소함은 누군가의 가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검소함을 내세우는 자는 자신만의 부를 쌓는 이기주의자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소비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방법이 있다. 루소는 홉스적 공동체의 와해가 다툼과 불행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선한/고귀한 야만인'(bon/noble sauvage)였고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 분쟁과 다툼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멋진 신세계>에서 헉슬리는 홉스와 루소의 자연인들 사이의 충돌을 9장에서 18장까지 다루게 된다.


[탈-가치화]

신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도자들은 이전 시대를 지탱하던 가치를 무너뜨렸다. 성, 역사, 가족, 종교가 가진 가치는 문화를 구성하고 구성원들의 연대감을 부여하기에 필수적 요소였다.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다. 이 세계에서는 성, 역사, 가족, 종교가 공동체를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기능을 대체하는 가치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기존의 가치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으로 완성된다.


[성]

<아담과 이브>, 알브레히트 뒤러, 1504

<후미진 풀밭에서 일고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새로운 발견에 열중하는 과학자라도 되는 양 진지하게 기초적인 성교 놀이를 하고 있었다. … 자신들은 진작에 집어치운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경멸감이 일었던 것이다..>


신세계에서 어린아이들의 '기초적인 성교 놀이'는 원시 상태의 인간으로 돌아간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인식은 원죄 이전의 인간, 근원의 인간이 가지고 있던 본능을 허용하는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원죄 이전의 인간에게는 '수치심'이 없었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알기 전의 상태, 즉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움'이라는 말로 그들의 행위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신세계에서 아이들의 성적 유희를 바라보는 이들의 판단은 성장의 낮은 단계에 대한 경멸일 뿐이다. 그들에게 어린아이들의 본능적 행위는 '미개함'이고 이러한 '미개함'은 '악'이 아닌 자신의 '과거'에 대한 조롱일 뿐이다. 내가 걸어온 길을 걷는 후발주자들을 보며 그들의 미래인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상태이다. 산업시대 이후 국가 간의 힘은 비교 가능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선진국, 개발 도상국, 후진국이라는 단선적 발전 모델은 선진국에 속한 시민들이 후진국 시민들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감으로 드러난다. 

성 자체에 대한 문제로 되돌아가보자면 성에 대한 신비주의를 유지하여 통제하고자 했던 '성적 억압'상태에서 벗어난 신세계는 다소 황당한 방법으로 새로운 가치를 정립했다. 그것은 <성의 무가치화>이다.


[역사]

<위대한 포드님께서 들려주시던 아름답고 감동적인 말씀을 말이다역사는 허무맹랑한 것이다. … 언제부터인가 통제관의 서재에 있는 금고에 오래된 금서가 들어 있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그것이 성경인지 시집인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무스타파 몬드가 말하는 바와 같이 신세계는 역사를 '무가치화'한다. 그 방법은 지식에 대한 통제이며, 2장에서 이루어진 책에 대한 접근 금지이다. 진시황과 나치에 의해서도 시도되었던 '금서정책'은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부정이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된다.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자연적 존재'와는 달리 인간은 스스로의 역사 속에서 자기 부정성을 발견한다. 역사의 중요성은 인간의 한계, 즉 미래와 현재를 관조할 수 없는 무지 상태에 최소한의 지각을 제공한다는데 있다. 전혀 달라 보이는 개별 사건들에서 '보편성'을 발견하는 것, 그것을 인지하고 보다 나은 선택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하지만 신세계의 모토 '동일성'과 '안정성'에 이러한 '자기 부정성'은 위배된다.


심지어는 사색이라는 걸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이 낭비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사색'은 자신의 현재를 역사 속에서 관조하는 것을 말한다. 사색을 통해 우리는 특수성인 '현재'를 보편성인 '역사'에 넣어볼 수 있다. 신세계의 공동체는 '정지'와 '안정'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이들의 보편성인 '동일성'은 개별 존재들의 복종을 요구한다. 이에 의문을 갖는 행위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가족]

신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 그것은 가족이다.


<머릿속으로 한번 그려 보게아기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온다면 어떨지 말이야. …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 혹시 집(home)이 뭔지는 알고 있나?>


가족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기 위해 생물학적, 계보학적 뿌리에 대한 근원적인 부정적 감정을 심어놓았다. '집'이라는 개념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자란 태아가 다른 인격적 존재들과 한 공간을 공유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껏 숨 쉬고 편안히 쉴 공간도 없으니 소독도 제대로 되지 않은 감옥이나 다를 바 없다한마디로집은 어둠과 질병과 악취의 온상이다. … 집은 육체적으로 불결한 것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추잡한 곳이었다. … 게다가 가족 간의 친밀감이란 또 얼마나 답답한 것인가위험하고 음란하고 정신 나간 짓이다!”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은 타인의 개입과 간섭을 전제한다. 가족 내의 간섭은 사회적 규율과 공동체의 삶을 위한 첫 번째 경험이다. 개인이 모여 만든 공동체는 서로의 자유를 제한하며 이루어지는데 가족은 이러한 상호자유침해의 필연성을 겪는 최초의 사회화 과정이다. 이곳에서 위생상의 위험을 주고받기도 하고 정신적인 오염이 일어나기도 한다. 또한 가족 간의 친밀감은 근친의 위험을 내포하기도 하지만 본능적 감정과 사회적 감정을 구분 짓게 하는 도덕적 훈육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위대하신 포드님은 심리학적 문제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자신을 프로이트라고 불렀다프로이트는 가족생활의 끔찍한 위험성을 최초로 폭로한 사람이었다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아버지가 있었고그 수만큼의 비극이 존재했다. … 광기와 자살이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장-앙투안-테오도르 지루스트, 1788

신세계는 '가족'의 부정성만을 강조한다. 무스타파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오이디푸스 증후군>의 예를 들며 가족이 '광기와 자살'의 원인이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삶은 가족이라는 굴레가 낳은 문제가 아니다. 능력과 도덕성, 성실함과 현명함까지 모두 갖춘 오이디푸스조차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는 삶의 비극적 측면을 통해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삶에 주어진 작은 것들에 대한 만족과 행복을 찾고자 했다. 프로이트는 권력과 지배 구조를 가족 안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발견하고 그것이 성적 충동의 원천적 억압과 터부, 강박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토템과 터부>(1913)에서 밝히고 있다. 신세계의 설계자들은 가족 제도에 대한 무가치성을 주장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이론을 부분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충동과 정력]

<가족과 일부일처제그리고 연애두 사람 사이에는 어디를 가나 다른 이성에게 한눈팔면 안 된다는 약속이 존재했고그 때문에 충동과 정력을 분출할 방법은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 만인은 만인의 것이다.>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신세계의 설계자들은 '안정'에 위협을 가하는 모든 가치를 무효화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견디기 힘든 것은 '충동과 정력'이다. 관계의 안정감을 주기 위해 이전 시대는 '도덕'과 '법률'을 이용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본능적 충동과 상충했으며, 결혼이라는 '안정을 위한 계약'은 이혼이라는 '계약 파기'를 수용해야 했으며, 재혼과 자유연애라는 대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신세계의 설계자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충동과 정력'을 취급했다. 그것은 '만인을 만인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안정또 안정사회의 안정 없이는 문명도 없다개인의 안정 없이는 사회의 안정도 없다!” … “안정바로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안정은 가장 근원적이며 궁극적인 필수 요소다.” … “우리는 너희가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감정'은 특정 영역에 대한 '과도한 가치'를 부여한다. 특정 물건이나 동물 혹은 사람에 대한 과도한 소유욕을 부추긴다. 이것을 다루기 위해 신세계는 '감정의 제거', '소유의 공동화'를 채택한다. 이곳에서 한 아이가 다른 아이와의 관계를 위해 한 달을 애타게 기다릴 때 생기는 감정은 "끔찍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그런 끔찍한 감정에서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선구자들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


'안정'을 해치는 '감정'은 제거의 대상일 뿐이다. '총동과 정력'은 조절과 해소의 대상이 아닌 '불필요한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인간에게는 '이성적 합리성' 밖에 남지 않았다.


[과거 청산 운동]


<“그 맬서스 허리띠정말 예쁘다!” / “그와 함께 과거 청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박물관 폐쇄도 그중 하나지거의 모든 문화재가 9년 전쟁 때 파괴되었고역사적 기념물 역시 남김없이 폭파되었다포드 기원 150년 이전에 출간된 책들은 금서로 지정해 더 이상 읽지 못하게 했다.”>


역사의 종말은 인간이 조절과 해소의 과정을 겪으며 걸어온 발자취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기억을 담는 그릇인 문화재와 역사적 기념물은 남김없이 사라졌고, 기억을 전하는 기호인 책은 접근 불가 처분을 받았다. 과거를 청산한다는 것은 반복된 인간의 실수와 실패를 삭제하는 행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실수로 점철된 자신에 대한 부정과 자기애의 결여를 지적한다.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빌런 타노스의 '핑거 스냅' 장면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빌런 타노스는 우주의 종말을 막기 위해 전 우주의 인구 절반을 무작위로 없애기 위해 인피니트 스톤을 모은다. 그리고 그의 '핑거 스냅'은 한 지도자의 결단을 통한 인위적 인구 조절이 인류 전체에 대한 구원이 가능하다는 자기 확신을 의미한다. 


인구통계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는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1798)에서 인구증가와 식량 생산증가를 비교했다. 그의 결론은 인구의 자연적 증가는 기하급수적이지만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식량부족에 의한 빈곤은 필연적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해결책은 출산율 통제와 결혼 제한 등의 인위적 인구조절이었고 신세계에서 '맬서스 허리띠'는 이러한 인위적 통제 방법의 비유다.


[결점 없는 약]

인위적 통제는 늘 부작용을 동반한다. 육체적, 정신적인 자발적 복종에도 불구하고 내재된 충동은 우울로 이어진다. 충족될 수 없는 그들의 충동은 이미 무의식에까지 뿌리내린 초자아의 지배력이 스스로 그것을 충족시키기를 부정함으로 공허해진다. 이러한 공허함은 인류 역사상 늘 존재했고 신세계 이전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소되었다.


<“구시대 인류는 천국을 믿으면서도 흥청망청 술을 퍼 마셨지.” … “심지어 영혼과 불멸이라는 개념도 있었다.” … “기독교와 술이 지닌 장점을 다 갖추었지만 결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약이지.” … “그렇게 해서 안정을 찾았다.””>


<성 테레사의 환희>, 잔 로렌초 베르니니, 1675

영혼과 불멸에 대한 믿음과 천국에 대한 기대는 현재의 고통을 견디게 만드는 효과를 갖는다. 현재의 고통을 잊는 방법으로 기독교는 먼 미래에 대한 '약속'을 택했고,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는 술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술은 탈아의 방식을 이용한다. 현재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만들고 자신의 육체에 대한 통제권을 느슨하게 만든다. 다시 완전한 통제를 되찾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이다. 그리고 육체는 다시 술은 찾게 된다. 하지만 종교와 술은 광기과 중독이라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그것이 가진 장점은 환희와 도취 상태에 빠져 공허함과 괴로움을 잊게 되는 것이지만, 반복된 자극은 점점 낮은 충족률로 이어질 뿐이다. 신세계에서는 이러한 부정성이 제거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것은 소마(Soma)라는 알약인데, 소마는 힌두교의 베다 시대에 사용되던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음료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마약과 같은 소마는 소설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부정성이 제거된 약물이다. 하지만 완전히 제거된 부정성은 없다. 소마라는 것의 존재 자체는 인식되지 않는 부정성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이 아닌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이 "결점 없는 약"의 정체다.


근대의 합리성은 부정성을 제거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분석은 긍정성에 기여한 것과 기여하지 못한 것을 나누어 보는 방식이고, 기여하지 못한 부분은 도려내어 긍정성을 키우는 방식이 선정된다. 효율성과 편리의 가치는 동일성의 승리를 뜻하며, 이곳에서 타자는 추방된다. 돌연변이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을 대비하는 자연의 생존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공동체 속의 부정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미래의 긍정성의 가능태일 수 있다. 하지만 신세계는 새로운 환경의 도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돌연변이는 단순히 위험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신세계에서 신체적 결함을 가진 버나드 마르크스는 일종의 돌연변이로 소마를 거부한다. 그는 쾌락을 즐기는데 온 시간을 쏟는 신세계의 시민들을 향해 외친다. 


<한심한 머저리, 짐승 같은 놈들!>


우리는 한심한 머저리, 짐승 같은 놈들일까? 아니면 고통과 괴로움을 즐기는 마조히스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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