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불모지에서 느끼는 서정에 대한 불안

편혜영,「어쩌면 스무 번」,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by 노창희

편헤영의 소설을 읽고 구체적인 지명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적어도 내가 읽은 소설들로 한정해 본다면 단 한 번도 특정한 장소가 생각난 적은 없다. 편혜영의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은 불모지에 가깝다. 그 공간은 추방된 자가 온 공간이거나 추방이 예정된 자의 공간이다. 추방당한 자는 언제 다시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불안에 시달리고 추방이 예정된 자는 예정된 시기를 혹시라도 늦출 수 있을지 타진하며 전전긍긍하지만 예정된 결말을 피해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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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무 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작가는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들은 다만 기능적인 역할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이는 중심화자 ’나‘는 회사에서 소리를 지리는 기이한 행동을 해서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존재다. 아내는 치매인 아버지를 돌보며 근근이 불안정한 임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장인의 치매 증세가 심해져 그마저도 어려워지자 이들은 인적이 드문 시골로 거처를 옮기고 장인을 돌보는 대가로 아내가 형제들로부터 받는 생활비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들에게 찾아온다. 처음으로 찾아온 이웃집 남자는 옥수수를 건네며 친근한 척 다가오지만 사실 그들을 염탐하러 온 것처럼 보이며(그의 의심은 결코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이 암시된다), 전도자들은 헌금을 요구하러 오고, 보안 업체 직원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팔러 온다. 사실 아내와 나에게 그들은 보안업체 직원이 아니라 경찰에 가깝다. 보안업체 직원들에게 장인의 존재를 개로 둔갑시키는 이들의 행위를 목격한 독자는 리뷰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에서 정이현이 ”소설이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라고 명명한 바와 같이 이들의 혐의를 명백히 확인하게 된다. 이들은 장인의 유산을 노리고 장인을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더욱 결정적인 장면은 이 소설의 제목 ”어쩌면 스무 번“이 등장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폴 불스(Paul Bowles)의 소설 The Sheltering Sky에서 인용한 ”어쩌면 스무 번“이 포함된 저 문장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이 담겨 있다고 나는 읽었다.


둥근달을 보면 옥수수밭에 숨어서 이렇게 꽉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싶어졌다. 어쩌면 스무 번.
기껏해야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눈가가 시큰해졌다(96쪽).


범죄를 염두에 두고 황량한 불모지에 불시착한 존재조차도 서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이다. 문제는 그 서정을 느낄 수 있는 유통기간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스무 번이든, 이백 번이든 그 유한함 앞에서 인간은 슬픔을 느낀다. 정이현이 리뷰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에서 말한 것처럼 ”달이 차고 기우는 일은 무한하지만 인간의 모든 일은 유한하니까(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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