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환한 나무 꼭대기」,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작가노트 「결국, 환해지고 싶은 마음」에 「환한 나무 꼭대기」의 원래 제목이 '신과 인간(142쪽)'이었다는 걸 읽고는 작가의 고민이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 대략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떠올렸던 것은 '성'과 '속'이었다. 아마도 종교가 없고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경험이 없어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신과 인간이 아닌 성과 속이라는 대립항을 설정해 본 것은 조해진의 소설에서 인간이 발 딛고 있는 현실과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 사이의 괴리 때문에 생기는 실존의 문제는 「산책자의 행복」(『빛의 호위』, 파주: 창비)에서도 다루고 있는 것이어서 낯설지 않았고 「산책자의 행복」보다 그 대립항이 보다 명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라고 주로 호칭되는 강희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출가를 했다는 이유로 가깝지 않은 동기생들에게까지 종종 대화거리로 소환되곤 한다. 말기 암에 걸린 혜원은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지인에게 간병을 받고 싶었고, 출가 이후 별다른 사회적 경험을 쌓지 못하고 간병을 통해 생계를 이어나가는 강희에게 간병을 맡기게 된다. 이 소설에서 정확한 정보가 주어지지는 않지만 아마도 혜원이 강희에게 간병을 부탁한 이유 중 하나는 출가를 했었다는 혜원의 삶이 주는 아우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출가한 이유를 물어보는 혜원에게 강희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데 이 설명하지 못함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가 나는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리뷰 「고독 너머의 빛, 환한 나무 꼭대기」에서 은희경은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로 "대학 졸업 후 절에 들어가야 했던 절절한 사연이 없다(145쪽)"는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 사연이 없음으로 해서 나는 이 소설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속'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우리는 '성'의 세계에 대해 알 수 없으며, 속과 성을 정확히 구분하려고 하는 그 태도가 속절없는 미망이라는 바로 그 사실.
혜원이 출가한 이유를 물을 때 강희는 자신의 삶에 "타인의 호기심과 겸허한 관심을 받을 만한 사연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131쪽)"에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다고 회상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호기심을 받을 만한 삶이란 어떤 종류의 삶인가?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속에 속해 있는 인간의 대다수는 속이 아닌 성의 세계를 동경하지만 그 실체에 가닿는 것은 너무도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강희는 자신이 환속하기 전에 절에 머물렀던 기간에 대해 "시곗바늘의 회전으로 차곡차곡 증량된 실재가 아니라 질감도 형태도 없이 허공에서 흩어지는 희끄무레한 연기 같기만 했다(125쪽)"라고 기억한다.
강희는 혜원에게 두 가지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하나는 종이 가방 안의 성물이고 하나는 홍천에 있는 강희의 집이다. 이 상속은 완전한 상속이 아니라 언젠가 혜원의 아들이 한국으로 오게 되면 돌려주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상속이 아니라 원 상속자에게 잠시 빌린 것인 셈이다. 강희는 혜원의 유산에 대해 기약 없는 임대 권리를 확보하고 성과 속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동그란 달은 이곳과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처럼 보였고, 덕분에 그녀는 이 세계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138쪽)." 힘든 속의 세계를 버텨가는 우리에게 잠시 잠깐 주어지는 위와 같은 위안은 이 소설이 전해주는 온기이다. 그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환한 나무 꼭대기'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