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를 찾기 어려울 것 같은 미래에 대한 불길한 예감

정소현「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품위 있는 삶』. 파주: 창비.

by 노창희

정소현 소설의 제목에 “품위 있는 삶”이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역설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독자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윤승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다. 나윤승을 신뢰하기 어려운 것은 처음에 가족이 없다고 서술했던 그녀가 자신이 연락을 끊은 아들을 탓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독자는 무언가 잘못된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나윤승은 <품위 있는 삶-110세> 보험에 가입하여 안락한 노후를 맞이하게 된다. 얘기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손자인 하준이 찾아와 그 보험을 해지해야 한다고 윤승을 설득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윤승은 여러 가지 안락한 혜택을 주는 이 보험을 왜 해지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하준은 진짜 손자가 아니다. 보험의 혜택으로 손자처럼 윤승을 간병해 온 것뿐이다. 윤승이 아들로 알고 있는 민기 역시 마찬가지.


<품위 있는 삶-110세 보험>의 특약은 치매에 걸리면 안락사를 시켜준다는 것이다. 윤승은 물론 이 특약에 동의하고 이 보험에 들었지만 치매에 걸린 상태에서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리 없다. 하준은 이것이 안타까워 윤승이 안락사에 이르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나윤승이라는 사실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 신뢰할 수 없는 화자는 아마도 안락사를 맞이할 것이다.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은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담겨 있는 블랙 코미디다. 치매에 걸린 상태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온전히 판단하기도 어려울 것인데, 보험의 특약을 통해 안락사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설정은 딜레마적이다. 기술의 발전과 시스템의 진화가 삶의 품위까지 보장해 줄 수 없다. 정소현이 그리고 있는 것은 결국 품위를 갖추기 어려운 암담한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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