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세 여자: 20세기의 봄』. 서울: 마로니에북스.
조선희(2017)의『세 여자: 20세기의 봄』을 읽은 감상을 상투적으로 얘기하자면 ‘재미있고’, ‘유익하고’, ‘감동적’이었다.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읽는 동안 나의 무식함이 부끄러웠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의 혁명가들 얘기다. 요조, 장강명의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에서 장강명이 김훈 에세이를 낭독해 주었는데, 내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더라면 딱 저렇게 살았지 싶었다.
“아마도 나는 일제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조국독립을 원하기는 하지만 반일투쟁은 무서워서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친일을 할 지위에도 오르지 못하고 그저 그날그날 꾸역꾸역 벌어먹고 살았을 것이다(김훈, 2002,「‘국민정서’의 허깨비」, 『너는 어느 쪽 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57쪽).”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꾸역꾸역 살지 않는다. 이들은 이상을 꿈꾸고 혁명전선에 뛰어들었다가 전향하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고, 정치꾼이 되기도 한다. 해방과 육이오전쟁 같은 주요한 역사적 이벤트 이후에는 생존투쟁을 겪게 된다. 해방이후 당파를 나눠가며 생존투쟁을 벌여야 했던 것은 식민 못지않은 비극이었고 그 와중에 희생된 자들이 너무도 많았다(물론, 이 비극도 식민이라는 상황이 초래한 것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무덤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들 부류의 삶 전체가 하나의 실수로 취급되었고 뒷날의 사람들은 그 얼룩을 지우고 싶어 했다(2권, 371쪽).”
서사의 힘이 강한 소설인데 그에 못지않게 문장도 좋다. 서사의 힘이 강하면 문장이 서사에 뭍이거나 미문이 많으면 서사가 궁색해 질 수 있는데 이 소설은 서사와 문장이 모두 좋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소설이지만 주인공들의 내면은 온전히 작가가 감당해 내야 할 몫이었을 텐데 내면 묘사가 좋아서 먹먹한 순간이 많았다. 소설로 쓰이기에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흥미로운 소재라고 모두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닐 텐데 좋은 소재가 훌륭한 소설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나서 “그 기원의 깊이와 같은 깊이를 지닌 이 방대한 소설은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 어렵다. 그들의 삶이 지금 우리의 삶에 비극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순탄한 저자의 문체 때문이기도 하다.”는 황현산의 추천사에 크게 공감했다.
출처: 2017년 10월 10일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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