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기 갱신을 위하여

무라카미 하루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by 노창희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주인공 하지메가 시작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20세기 후반에 접어든 첫해, 첫 달, 첫 주인 1951년 1월 4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날은 1951년 1월 4일이다(7쪽).”로 시작하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중년에 접어든 하지메라는 남성이 자신에게 찾아온 정체성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가는가에 관한 소설이다. 그런데, 하지메는 온전히 그 위기를 극복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결핍의 원인을 찾아 나가면서 온전한 나가 되어가는 플롯은 하루키 장편 소설의 전형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기사단장 죽이기』와 같은 최근작을 보면 그러한 경향은 보다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가 기억 속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고 그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서 머물렀다면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하지메는 결핍의 원인이 된 과거와 직면한다.


하지메는 외동이 흔치 않던 1960년대 일본에서 외동인 시마모토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이성 친구였던 만큼 둘은 자연스럽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메가 시마모토와 중학교 전학 이후 자연스럽게 멀어 지면서 비교적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반면,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갖고 있었던 시마모토는 더욱 고립된 생활을 이어 나가게 된다. 나중에 둘이 다시 재회했을 때조차 소설은 시마모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기를 꺼린다.

하지메는 두 번의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데, 하루키는 전자의 잘못에 대해 더 크게 의미를 두는 것 같다. 전자의 잘못이란 하지메가 고등학교 때 교제했던 이즈미의 사촌누나와 바람을 피운 것이다(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성행위를 했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이즈미는 평생 표정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고, 하지메는 그에 대해 우연히 동창에게 듣고 나서 소설 말미에 이즈미와 해후하게 된다. 물론, 이 해후는 이즈미에 의해 의도된 것이다. 이즈미는 하지메에게 자책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후자의 잘못이란 시마모토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메는 바를 운영하는데(하루키의 자전적인 요소가 반영된 것이리라), 시마모토는 하지메를 보고 싶어서 바로 찾아오고 결국 둘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서고 만다. 하지메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고 시마모토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시마모토는 하지메를 떠난다. 아마 그녀는 하지메의 일상이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리라. 그녀가 원했던 것은 그와 함께 죽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냇 킹콜의 <국경의 남쪽>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실 나는 하루키가 판타지적 요소를 가져오는 방식이 종종 못마땅한데,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인간은 누구나 결핍되어 있고, 하지메는 물론, 어린 시절 장애를 겪으며 고립되어온 사마모토에게 그러한 결핍이 가장 컷을 것이다. 그 결핍을 해소하는 방식이 이쪽 세계가 아니라 저쪽 세계인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물론,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저쪽 세계에서 그 결핍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시마모토는 하지메와 같이 죽은 것에 실패하면서 결국 본인도 이쪽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메와 사마모토가 가장 많이 같이 들은 노래인 냇 킹콜의 프리텐드는 심오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노래가 아니다. “‘고통스러울 때는 행복한 척해요.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22쪽).’”라는 평범한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다. 하지만 이 평범한 가사는 이 소설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저쪽 세계가 아닌 이쪽 세계에 살고 있고,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이면의 세계는 생애에는 아주 찰나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마모토가 끝내 이쪽 세계에 하지메를 남겨둠으로써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고통스러울 때는 행복한 척해서라도 이쪽 세계에 남아있기를 권한다. 이쪽 세계에서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하지메는 잘 해낼 수 있을까? 난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후속작들이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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