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자전적 소설인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운명에 좌절하는 개인에 대한 소설이다. 민음사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하드보일드 기법에 풍부한 시적 장치를 더해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이 작품은 영화, 연극,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그 울림 덕분에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제1차 세계대전은 식민지 경제 시대의 비극으로 최초의 근대전이라고 불린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발전된 기술은 무기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는 막대한 군인들의 피해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피해를 일으켰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데, 이는 전쟁의 참혹함에 집중하기보다 전쟁으로 인해 파멸되는 개인의 영혼과 사랑에 대해 다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기여 잘 있거라”는 왜 헤밍웨이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을까?
2. 줄거리
미국인 자원병으로 이탈리아군 앰뷸런스 장교로 복무하던 프레더릭 헨리, 제1차 세계대전에 이탈리아군으로 참전한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는 했지만, 후방에서 의료 지원을 하면서 비교적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헨리는 영국인 간호사 캐서린을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도중 헨리가 전방으로 의료 지원을 나가게 되고, 그는 전투에서 포탄에 맞아 큰 부상을 입게 된다. 부상을 입은 헨리는 치료를 위해 전선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마을로 후송되고, 그곳으로 따라온 캐서린과 아이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헨리는 다시 전방으로 배치되고 캐서린과 이별하게 된다. 전투에 다시 참여한 헨리는 이탈리아 군대가 패배함에 따라 함께 후퇴한다. 후퇴 도중 진격해 오는 이탈리아 군을 만나 헨리는 탈영 장교로 몰려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가까스로 탈출한다. 탈출 후 헨리와 캐서린은 다시 재회하고 스위스로 피신한다. 스위스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캐서린이 마침내 출산하지만 불행히도 캐서린과 그들의 아들은 사망한다.
3. 식민지 중심 경제
1차 세계대전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최초의 근대전이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기술이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어 냈고, 군인들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고통 속에 죽어갔다.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기 전, 유럽의 상황은 매우 낙관적이었다. 뉴턴의 물리학 이후로 인간에 대한 믿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이는 이성에 대한 추종으로 이어졌다. 이 믿음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산산조각 났다. 인간은 생각보다 잔혹했고, 인류를 파멸로 몰아갈 가능성이 다분해 보였다.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오스트리아 암살 사건”을 발생의 원인으로 꼽는다.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이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되었다. 그는 지독한 민족주의자로, 오스트리아 제국이 보스니아에 사는 세르비아 민족을 지배하는 것에 반발해 암살을 일으켰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유럽 각국이 동맹 체제에 따라 연쇄적으로 참전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는 표면적 원인일 뿐이며, 더 근본적인 원인은 식민지 중심 경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당시 영국, 프랑스를 위시로 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지배에 열을 올렸다. 식민지는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부를 가져다주었다. 강대국은 식민지로부터 원자재를 싼값에 들여와 자국에서 완제품을 만들었고, 그 제품을 다시 식민지에 되팔았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생산의 사회화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사이에서 발생하는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역 흑자에서 발생하는 자금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당시 전통적인 강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등은 많은 식민지를 소유했고, 이를 통해 국가의 세를 늘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것처럼, 독일의 통일로 새로운 강대국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비스마르크를 필두로 독일은 통일을 통해 거대한 국가로 발돋움했고, 이들 또한 식민지를 원하기 시작했다. 비록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독일은 빠른 속도로 영국의 기술을 따라잡았다. 그러나 기술 발전만으로는 한계를 느낀 독일은 식민지를 원했다. 문제는 식민지가 무제한 자원이 아니라 제한적인 자원이었다. 독일이 식민지를 원한다고 해서 프랑스나 영국이 순순히 내어줄 리 없었다. 독일은 불만을 품고 기회를 엿보았고, “오스트리아 암살 사건”이 좋은 명분을 독일에 내어주었다. 결국 제국주의 경쟁과 동맹구도가 폭발하며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등 강대국이 연쇄 참전했다.
3-1. 마르크스의 하부구조 상부구조론, 그리고 상호의존성과 도널드 트럼프
마르크스는 사회의 하부구조(경제체제)가 상부구조(법, 교육, 정치 등)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생존과 물질적 풍요에 근본적 관심을 두기에,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봉건제라는 경제체제에서는 봉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법제도와 교육제도가 결정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상부구조가 사유재산제도와 자유 등을 옹호한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보여준 것은, 마르크스의 하부구조 상부구조론이 국내 정치를 넘어 국제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경제는 강력한 국가의 기본이 된다. 따라서, 대립적인 경제제도는 대립적인 국제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다. “윈윈”이 불가능한 식민지 중심 경제체제는 불가피하게 큰 전쟁으로 이어졌다. 반면, “냉전 시대” 이후 재편된 세계는 자유무역을 통한 상호의존적 경제체제를 가진다.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으로 시작된 자유무역은 세계를 지배했고, 이는 타국을 침략하면 곧 자국에도 피해를 입히는 세계 질서를 형성했다. 중국은 값싼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 팔아야 한다. 미국이 없다면 중국은 물건을 생산했을 뿐, 이득을 볼 수 없다. 반면 미국도 중국이 필요하다. 미국은 국민들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인건비가 동반 상승했다. 이는 과거와 같은 제조업에 종사하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미국 국민들의 풍족한 삶을 위해서는 중국의 값싼 제조품이 필요하고, 이것이 상호의존성으로 이어진다. “냉전 시대” 이후 국가 간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호의존적 경제체제 덕분에 제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참극은 반복되지 않았다. 새로운 하부구조가 인간의 이성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는 매우 우려스럽다. 도널드 트럼프는 단기적 성과를 위해 관세를 무분별하게 부과하고 있다. 심지어 전통적 우방이라 할 수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에도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이는 자유무역을 포기하고 자국 중심주의로 회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비교우위”를 통해 무제한 자원을 확보한 뒤 타국을 식민지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그동안 국제경찰로서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일조해 왔는데, 도널드 트럼프는 이를 짐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미국이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자금을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압도적인 초강대국 지위와 글로벌 화폐를 보유한 덕분에 누리는 이득은 그 비용을 상회한다. 예컨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고, 미국 기업들은 자유무역과 안정된 질서를 바탕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수익을 올린다. 그러나 근시안적인 도널드 트럼프의 시각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와 안정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이 더욱 커지고 있는 지금은 동맹국들끼리 상호의존성을 줄일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을 높여야 한다.
4. 경험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전반부에서 헨리는 자신만만한 인물이다. 참여하지 않아도 무방한 전쟁에 자진해 참전했고,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느끼기보다는 유머로 전쟁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부상을 당하고 후퇴를 하면서 그가 가지는 전쟁에 대한 인식은 급격히 변화한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운전병들에게 동의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보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부대를 이탈한다. 하지만 후퇴 중 마주친 이탈리아 군인들은 헨리와 매우 다르다. 그들은 이탈리아 군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패배해 후퇴하는 군인들이 불명예스럽다고 여겨 이탈 장교를 처형하는 데 일조한다.
헨리와 다른 이탈리아 군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간의 전쟁에 대한 인식은 국가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형성된다. 이탈리아 국민으로서 이탈리아를 지키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존경받아야 하는 일이다. 전쟁의 참혹함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후방의 시민들은 미디어와 국가의 선전 도구에 의해서만 전쟁을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의 헨리와 이탈 장교를 처형하는 이탈리아 군인들은 자부심에 넘쳤던 것이다. 모두가 애국자일 때, 홀로 이탈하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요한다. 인간은 소속감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적 경험은 프로파간다에 앞선다.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프로파간다보다 자신의 경험에 따라 전쟁을 인식한다. 소중한 사람이 바로 옆에서 죽어가는 장면, 눈앞에서 폭탄으로 인해 사람이 터져 나가는 광경은 모든 선전보다 강력하다.
후설은 현상학에서 타자 인식의 방법을 논했다. 모든 개인은 자기 자아만의 세상을 가진다. 자아는 타인을 인식할 때 타인의 육체만 볼 수 있을 뿐, 타인의 자아 그 자체를 직접 인식할 수 없다. 자아는 타인의 행동을 통해 그가 나와 같은 인간임을, 그리고 신체 반응을 통해 그가 느끼는 감정과 내 감정을 동일화하여 인식한다. 타자의 자아는 물질이 아니므로 직접 경험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가지는 타인에 대한 이해는 간접 체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타자의 자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쉽게 주장한다. 그가 어떤 경험을 통해 어떠한 상처를 지녔는지 고민하지 않은 채, 내가 느끼는 감정과 태도로 타인의 상황을 판단한다. 광주 사태의 피해자에게 “이쯤이면 충분하다”라고 주장하거나, 범죄 피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에서 회복할 수 있을지를 조언하는 식이다. 이러한 태도는 후방에서 국가의 선전을 통해 전쟁을 판단한 이탈리아 군인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면,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도록 기회를 열어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4-1. 빙산 이론
후설의 타자 이해론을 헤밍웨이는 빙산 이론을 통해 구현해 낸다. 헤밍웨이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글로 직접 드러내기보다, 상황과 행동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이는 작가가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독자가 주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다.
“그러나 간호사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상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나는 병원 밖으로 나와 병원을 뒤로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발을 옮겼다.”
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문장으로, 헨리의 감정을 직접 묘사하지 않지만 행동을 통해 독자가 감정을 유추하게 한다. 후설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헨리의 자아를 직접 느낄 수 없기에 우리의 신체 반응을 통해 대리 체험만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체는 독자가 주체적으로 대리 감정을 느껴 작품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만든다.
4-2. 국가와 인간의 관계: 국가는 인간에 앞서는가?
봉건 제도하에서 왕은 시민 위에 군림했다. 신으로부터 정통성을 이어받은 왕은 시민을 지배하고 명령할 권리가 있었다. “이 국가가 나로 인해서 만들어졌는데, 왜 그런 정통성이 없겠는가?” 왕권신수설에 따르면, 국민들은 국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 국왕이 신으로부터 왕권을 이어받았고, 국왕은 국가를 통해 국민들의 안전을 도모한다. 당연히 국가로 인해 안전해질 수 있는 국민은 왕에게 복종해야 하고 따라야 한다. 왕권신수설에 따르면, 국민들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오직 복종을 위해 존재한다. 왕권신수설 옹호자들은 이를 통해 국가 안정 등을 도모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루소로부터 시작된 사회계약론은 왕권신수설을 철저히 부정한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개념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국가를 형성하고 지도자에게 권력을 부여했을 뿐이다. 이는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는 철저하게 부정당한다. 헨리에게는 국가나 민족보다 캐서린과 그들의 아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헨리가 초래하지 않은 전쟁을 유지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나야만 했다. 소설 곳곳에서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고아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국가는 민족과 애국심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박탈하고 그들을 도망자로 만든다. 그리고 순응하지 않은 사람들을 범죄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사회로부터 격리한다. 도망자를 범죄자로 만들어 체포할 수 있는 공권력이 사실은 국민에게서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국가는 결코 인간에 앞서지 않는다. 국가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위해 만들어 놓은 존재일 뿐, 그 자체로 어떠한 권리도 갖지 않는다. 국가의 목표가 기본적 인간의 존엄성 보호보다 앞설 때 비극이 시작된다. 국가의 목표는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식민지의 존재 이유는 제국주의가 더욱 제국주의적으로 확장되기 위함이다. 제국주의가 더 왕성해질수록, 지배자와 지도자는 더 큰 이익을 얻게 된다. 이를 위해 인간이 희생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국가라는 개념으로 인해 인간이 불행해지기도 한다. 헤밍웨이가 주인공을 미국인으로 설정하고 이탈리아 군대에 입대한 뒤, 영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스위스에서 이야기를 마감하는 방식으로 국가와 국경의 무의미함을 보여 준다. 국민은 단지 태어난 국가의 구성원일 뿐, 그 국가에 절대적 의무를 질 이유는 없다. “오히려 국민은 국가가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때만 국가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힘이 국민으로부터 나왔고 국가는 그 힘을 대여한 것이라면, 주인이 서비스에 대한 만족감이 없을 때 힘을 다시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다른 국가가 나에게 받은 힘을 통해 나에게 더 좋은 미래를 줄 수 있다면, 이는 주인이 가진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압받고 행복한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다른 국가로 떠나 나의 행복을 도모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만족을 느끼고 바로 이민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명확히 인식할 때만, 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할 때, 선거나 시위 등을 통해 우리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도구적 이성과 도구적 존재
계몽의 변증법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의 문제점을 논의했다. 이성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어져 왔다. 그리고 이성은 인간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이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성이 자본주의와 결탁하면서, 이성은 스스로 목적을 창조하기보다 자본주의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만약 이성이 스스로 목적을 창조한다면 “어떤 길이 바람직한가?”, “어떤 삶을 통해 인류가 더욱 이성적이 될 수 있는가?”를 끝없이 질문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성을 도구로 삼으면서, 이성의 제1목적은 정의나 인간다움이 아니라 효율성이 되어 버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은 숫자로 환산되고, 효율성이 다른 가치보다 우선한다. 효율적이지 못한 움직임은 도태되고 어떠한 지지도 얻지 못한다. “무기여 잘 있거라” 속 군인들은 철저히 도구화된 개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흔히 참호전으로 정의된다. 양 진영이 참호를 파고 상대의 폭격에서 몸을 숨기며, 서로가 참호를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참호 안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다. 계속된 폭우와 사망자로 인해 위생 상태는 최악이 된다. 시체와 쥐가 참호 안에서 둥둥 떠다니고, 군인들의 몸은 썩어 들어간다. 참호전은 전선이 대치 상태로 고착되는 상황으로, 깊게 파인 참호는 적군의 침입도 아군의 진격도 어렵게 만든다. 결국 몇 미터의 땅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 인간이 도구화되고 버려진다. 헤밍웨이는 소설에서 군인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개성을 드러내려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장군에게 그들은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6. 피할 수 없는 운명 그리고 카뮈의 부조리
“무기여 잘 있거라”는 헨리가 자기에게 닥쳐오는 운명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인이지만 가족과 불화가 있어 이탈리아로 왔고, 그곳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의 결실로 아들을 얻지만, 다시 전쟁에 휘말린다. 전쟁의 참혹함에서 도망쳐 연인과 재회하려고 애쓰고, 결국 스위스로 가서 아이를 낳으려 하지만 아이는 사산되고, 캐서린은 산후 출혈로 세상을 떠난다. 헤밍웨이는 이를 통해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아무리 애써도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는 메시지처럼 보일 수 있다.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서 겨우 벗어났건만, 행복의 종착점이라 여겼던 출산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는다. 이러한 결말은 자칫 허무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라 하나, 운명이라는 거대한 굴레는 피하기 어렵다. 허무주의적 시각에서 헨리의 불행은 그의 노력으로 잠시 미뤄졌을 뿐이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잃을 것도 많아지고, 고통만 커졌다고 볼 수도 있다. 캐서린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없었다면? 차라리 헌병들에게 처형되거나 폭탄에 맞아 죽었다면 고통이 더 작았을까?
이와 관련해 카뮈는 자신의 부조리 이론을 들어 반박한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를 통해 부조리를 설명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세상은 인간보다 훨씬 크고, 이성적·도덕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이 착한 사람이 잘살아야 한다고 주장해도, 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 세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어느 날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부조리에 저항할 수 없고 희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조리에 희생된다는 것이 부조리에 반항하지 말아야 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반항해야 한다. 반항이 세상을 바꿀 수 없어 보여도, 인간은 반항을 통해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허무주의적 관점에서는 헨리의 고통이 단지 뒤로 미뤄졌을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헨리는 나름대로 반항하며 순간순간 행복을 찾았다. 폭탄에 맞아 사망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캐서린과의 진지한 사랑이 없었다면 아들을 얻는 기쁨도 없었을 것이다. 헨리의 이런 반항은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런 연대로 부조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험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다. 출산 과정에서 아내와 아이를 잃은 남편을 보며 의사들은 의술 개발에 매진할지도 모른다. 헨리와 캐서린이 겪은 불행을 보면서 전쟁에 반대하는 인식을 키울 수도 있다. “어차피 끝이 정해진 희생인데 왜 노력해?”라는 태도가 아니라 “희생될 때까지 매일매일 반항하며, 우리 나름대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싹틀 수 있다. 삶에 반항하는 인간만이 인간성의 진보를 이끌 수 있다.
7. 결론
“무기여 잘 있거라”는 헤밍웨이의 자전적 요소가 강한 반자전적 소설이다.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군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참전했다. 그곳에서 부상을 입고, 7살 연상의 간호사를 열렬히 사랑했다. 후퇴 도중 이탈리아 군이 이탈리아 군인을 사형시키는 장면을 목격하며 그는 허무함을 느꼈다. 이 경험이 녹아든 “무기여 잘 있거라”는 고전의 대열에 올라섰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해서 단순히 주관적이라고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된다. 그는 빙산 이론을 통해 상황 묘사에 힘을 쏟았고, 덕분에 독자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과 그 안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삶을 대리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다시 읽어도 좋을 작품이다. 상호의존적 경제체제가 배타적 경제체제로 바뀌는 지금,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관세 인상으로 이어지는 보호무역주의가 단기적 이득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과거의 비극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며, 부조리 앞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