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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협을 다시 읽다: 모듈화, 제도 아웃소싱

서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표방한 미국과 독재와 공산주의를 내세운 소련의 대립은 결국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를 지켜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국을 위협할 수 있던 소련의 멸망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경제 체제가 끝났음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역사의 종말”이란 인류의 역사, 즉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인류의 노력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란을 비롯한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도발은 그의 이론에 조그마한 생채기를 내기도 했지만, 미국과 유럽의 엄청난 발전은 후쿠야마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아시아의 잠들어 있던 용 “중국”의 급부상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서구 사회에 큰 위협과 긴장감을 심어주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제조업으로 성장했지만, 이제는 인공지능, 전기자동차 그리고 재생 가능 에너지 등 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분야에서 중국이 서구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최신식 반도체 수출을 차단하고 관세 전쟁을 불사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이 중국을 큰 위협으로 본다는 것을 방증한다. 중국을 위협으로 보는 시선이 다수이긴 하지만, 이러한 분석과 대응이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중국이 서구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지 않을뿐더러,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책이 중국뿐 아니라 서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중국이 거대한 위협이라는 주장은 시민들의 불안감을 이용한 정치적 수사일 뿐, 그 실체는 모호하다고 비판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중국에 대한 압박이 강해지고 있는 지금, 중국 위협에 대한 실체를 다시 파악하고 정확한 정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에드워드 스타인펠드의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는 매우 의미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중국의 성장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며, 중국의 성장은 위협이라기보다 서구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현재 지배적인 생각에 반하는 내용의 책은 매우 귀중하고 가치가 있다. 이 책을 통해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1990년대의 급격한 개방과 발전

개혁의 방향과 성격은 개혁의 원인과 이유에서 찾아야 한다. 개혁의 원인이 단순히 국가 발전이라는 염원에서 비롯되었다면, 개혁의 주체인 정부는 속도를 조절할 것이다. 개혁이란 필연적으로 기득권의 권력을 빼앗는다. 이전에는 없었던 제도 혹은 시스템을 차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계층에 힘을 나눌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 발전이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개혁은 기득권이 최대한 천천히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위기에서 비롯된 개혁은 속도를 조절할 여력이 없다. 지금 당장 변화하지 않으면 소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은 기득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혁에 매달리게 만든다. 그러므로 중국 개혁의 방향을 알기 위해서는 개혁의 원인과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


스타인펠드에 따르면, 1990년대 중국의 개혁은 위기에서 비롯된 개혁이다. 1978년 덩샤오핑은 “흑묘백묘(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중국의 문호를 개방했다. 중국은 외국 자본을 유치하며 시장을 단계적으로 개방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중국은 1990년대의 엄청난 속도와 비교하면, 세계에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 시기는 국가 발전이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개혁의 시기로, 기득권이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1989년에 발생한 천안문 사태는 중국 정부의 존재 자체를 위협했다. 뿐만 아니라,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한 미국의 약진은 중국인들에게 경고음을 울렸다. 이에 1990년 이후 중국의 개혁은 국가 발전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할 명분으로 시작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득권층은 위기 극복이 최우선 과제이기에 어느 정도 기득권층의 권력을 희생시키더라도 빠른 개혁을 단행했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약 9.4%로 높았다. 하지만 이는 농업과 제한된 지역에서의 실험에 머물렀다. 전통적인 공산당원들과 중국 내부에서 성장한 인재에 대한 수요가 높았고, 외국에서 공부한 유학생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의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반면에, 1990년 이후, 특히 덩샤오핑의 1992년 남순강화 이후 중국은 본격적인 시장화 개혁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약 10.9%로 더욱 상승했다. 그리고 중국형 인재보다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국제형 인재가 더욱 중용되었다.


제도의 아웃소싱화

스타인펠드는 1990년대 이후의 중국 개혁 방식을 “제도의 아웃소싱화”라고 불렀다. 중국이 본격적인 개혁을 통한 경제 성장을 추구한 1990년대는 이미 서구식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시기였다. 미국을 위시로 한 서구식 자본주의는 자유시장을 기반으로 한 경쟁을 통해 생산성과 혁신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애플, 일본의 도요타, 소니, 독일의 폭스바겐, 지멘스 등이 세계 산업을 주름잡았다.


전통 경제학은 자유무역이 개발도상국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개발도상국은 비교우위를 통해 자유무역에서 금전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의 한계생산이론에 따르면, 높은 수익률을 쫓는 서구 자본은 개발도상국에 투자될 수밖에 없다. 자본의 수익률은 자본당 얻을 수 있는 생산성 증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경제성장 초기에는 적은 자본으로도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단순 이론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산업의 변화가 필요하다. 자본의 한계생산이론은 저부가가치 산업에만 적용되기 쉽다. 농업에서 단순 제조업으로, 그리고 단순 제조업 중에서도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만 개발도상국의 비교우위가 유지되고 자본당 생산성도 늘어난다. 하지만 저부가가치 산업은 개발도상국을 선진국으로 도약시키지 못한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자동차, 핸드폰, 전자기기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산업은 자본뿐 아니라 기술력과 노하우가 필수적인데, 이러한 기술력과 노하우는 자본과 달리 개발도상국으로 쉽사리 이전되지 않는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제조업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경제성장은 한계가 있었다. 중국은 이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다른 개발도상국과는 차별화된 전략을 택했다. 중국은 단순히 서구 자본을 받아들이고 시장을 개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국 기업의 문화와 경영방식을 받아들이는 “제도의 아웃소싱화”를 채택했다. 이때부터 중국 정부는 국내기업보다 외국기업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외국기업과 파트너를 맺은 기업에 혜택을 주기 시작했고, 서구 자본주의에 익숙한 글로벌 인재들을 적극 등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기업들은 서구식 제도에 영향을 받는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 제조업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중국 기업들이 외국의 제도를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데 중점을 둔 방법이었다.


“기업 제도의 아웃소싱화”는 제도 자체의 변화도 가져왔다. 서구식 경영은 과거 중국 공산당이 내세운 사회계약과 전혀 다른 세계를 전제한다. 노동 이동이 보장되지 않았고 사유재산 제도도 확립되지 않았던 과거 중국에서, 서구식 경영방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노동 이동과 사유재산 제도가 필연적이었다. 또한 유연한 고용 제도를 위해 평생직장의 개념 또한 철폐되었다. 이처럼 중국 사회는 기업 제도의 아웃소싱화를 통해 외국 기업들을 단순히 따라가는 개혁이 아니라, 외국 기업을 통째로 카피하는 형태의 개혁을 시도했다. 이는 중국이 어느 나라보다 빠른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모듈화와 서구의 발전”

중국 “기업 제도의 아웃소싱화”는 어떤 종류의 발전을 가져왔을까? 중국 기업이 서구 기업들과 같은 제도와 정신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곧 선진국 기업과 동등한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외국 기업들의 효율성을 흡수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선진국 기업과 개발도상국 기업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노하우의 차이는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웠다.


모든 제조업은 설계도면을 따라 제품을 생산한다. 하지만 초기의 설계도면은 완벽함과 거리가 멀다. 도면에 적힌 수치나 부품들은 실제 생산 과정에서 변형·수정되는데, 이런 노하우와 기술은 오랜 기간 사업을 유지한 기업들이 축적해 온다. “제도의 아웃소싱화”는 이처럼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중요한 노하우와 기술까지 쉽게 가져오지는 못했다. 서구 기업의 특허 권리를 무시하고 중국이 모든 기술을 도용한다는 주장은 사실의 일부만을 반영한다. 특허를 무시하고 훔칠 수 있는 것은 초기 설계도면이나 기계의 구동 방식 정도이며, 제품 완성도를 높이는 세세한 노하우와 기술은 훔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택한 방법은 ‘생산의 모듈화’다. 생산의 모듈화란 특정 제품을 생산할 때, 기술과 노하우를 기계나 설계공정에 녹여 누구나 그 모듈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생산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엔진은 숙련된 기술자와 노하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기술과 노하우를 고성능 기계에 녹여낼 수 있다면, 어느 공장에서도 엔진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해당 기계가 매우 비싸겠지만, 이를 작동시키는 노동자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로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 이런 모듈화가 1990년 이후 중국 경제 발전의 핵심이었다. 중국은 새로운 기술 자체로 서구를 따라잡기 어려운 대신, “제도의 아웃소싱”과 “생산의 모듈화”를 통해 세계 제조업의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값싼 노동력과 강력한 정부 지원, 높은 교육 수준의 노동자풀이 결합되어, 하이얼·화웨이·레노버 등의 세계적 기업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모듈화”는 양날의 검이다. 모듈화를 통해 제조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기는 했지만, 두 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첫째, “모듈화” 기반 기업들의 이익률은 매우 낮다. 중국이 만든 모듈을 중국 기업뿐 아니라 다른 국적의 기업들도 손쉽게 사용함으로써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최종 조립과 브랜드 이미지는 주도 기업이 담당하기 때문에 부품이 어디에서 생산되는지는 소비자들에게 큰 고려 대상이 아니다. 결국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중국 기업들은 가격을 더욱 낮출 수밖에 없었고, 이는 낮은 마진으로 이어졌다. 연구개발비 확보도 쉽지 않아, 중국 내수시장과 국민 생활 수준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둘째, 중국의 “모듈화”는 오히려 서구 기업들이 기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제조 없이 제품 아이디어와 기본 도면만 만들어도 중국의 모듈 기업들이 곧바로 생산해 주기 때문에, 서구 기업들은 제조 부담에서 해방되고 혁신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애플이 폭스콘·TSMC에 칩 생산을 맡기고 설계·브랜드·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것이 대표 사례다. 따라서, 중국의 경제발전을 견인한 “모듈화”는 서구 기업들의 혁신에도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외환관리 시스템

중국을 위협으로 보는 또 다른 사례로, 중국 정부가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대규모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는 미국 측의 주장이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의 반시장 정책이 미국 제조업을 약화하고 미국인들을 실업자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는 사실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중국 정부가 환율시장에 개입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처럼 환율거래를 전면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제도의 아웃소싱화”에서 자유로운 외환거래는 필수적이다. 중국 안에서 마음껏 환전하고 대금을 지불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중국 기업에 일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환율거래를 전면 통제하지 않는다. 중국의 환율 개입은 특정 수준에서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를 유지하는 정도다.


중국의 모듈화 기업들이 선전하여 서구 기업들이 중국 제품을 대량 구매하면, 위안화에 대한 수요가 상승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위안화 가치의 절상을 의미하고,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중국 기업들에는 치명적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시장에서 특정 가격으로 달러화를 매입함으로써 위안화 절상을 막는다. 물론 이 인위적 개입은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생산 비용이 저렴해진 서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전체적으로 미국 경제를 활성화하기도 한다. 또한 중국은 남아도는 달러를 낭비하는 대신 대규모로 미국 국채를 사들인다. 이는 미국의 이자율을 낮춰서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한다. 이는 분명 미국에도 이점이다.


미국 정부 또한 다른 방식으로 달러화 가치를 조절한다. 중국 정부가 달러 대비 위안화를 낮추기 위해 달러를 매입한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이션 조절을 목표로 금리를 올리거나 내림으로써 달러 수급에 개입한다.

<“기준금리를 높이면 타국에 투자되었어야 하는 자금이 미국으로 쏠린다. 이는 미국 달러에 대한 수요를 높이고 미국 달러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반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낮추면, 미국 자산의 매력도는 하락한다. 이는 미국 달러의 수요를 하락시키고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린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방법은 다르지만, 미국도 거시적인 측면에서 달러화를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과 미국의 시장 개입이 동일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론이나 미국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중국의 환율 개입이 무조건 파괴적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서구 기업과 서구 시민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

중국이 위협적인 이유는 단순히 중국이 서구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할 것 같아서가 아니다. 한 나라가 잘살고 또 쇠퇴해 가는 것은 역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과거 대영제국이 세계 최강의 지위를 미국에 물려준 것도 서구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 역사의 당연한 발전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국은 서구와는 확연히 다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목적을 위해, 서구가 오랜 세월 구축해 온 자유와 기본권이 무시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부상은 ‘미국’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 ‘서구가 지향하는 이상적 세계’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된다.


이런 면에서 에드워드 스타인펠드는 중국의 서구 위협론이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첫째,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의 이미지’ 자체가 과장되었다. 중국의 부상이 곧 미국이나 유럽의 쇠퇴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의 경제성장 방식은 미국과 서구의 발전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중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체감하는 서구와의 격차는 유지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중국 정부가 위협이 된다고 보는 핵심 이유는 중국의 정치체제가 서구와 다르다는 점인데, 스타인펠드는 이런 독재정치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리라고 본다. 경제발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탈독재화가 필수이고, 이는 대만이 이미 보여준 선례라고 설명한다. 대만처럼 독재에서 민주적 정치시스템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하든지, 현 체제를 유지한다면 지금과 같은 경제발전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타인펠드의 의견은 (시진핑이라는 새로운 독재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꽤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과거와 달라졌다. 일당독재가 더욱 강화되었고, 서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려는 중국 정부의 행동이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스타인펠드가 이야기한 “모듈화”는 지금도 유효하며, 그에 따른 서구 기업들의 우위 또한 여전하다. 하지만 현재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등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첨단 기술 영역에서는 아직 어느 누구도 절대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려면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 같은 새로운 혁신과 기술이 필요한데, 이 분야에서는 아직 절대강자가 없다. 전기차 역시 테슬라가 선두처럼 보였지만, BYD가 저렴한 가격에도 우수한 성능을 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하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전 세계 태양광 셀(태양광 페널의 핵심 부푼)의 90%를 리튬 이온 배터리의 60% 그리고 전기차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장도 한때 구글과 ChatGPT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중국의 ‘Deepseek’가 미국의 고성능 마이크로칩 수출 제한에도 ChatGPT와 유사한 성능을 보여주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 ‘Deepseek’의 R1의 훈련 비용은 74억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었지만, OpenAI의 GPT-4 모델의 훈련 비용은 1,320억으로 약 20배 정도 더 비싸다. 하지만, Python 코드 생성능력에서는 오히려 DeepSeek가 더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급부상 원인은?

첫째, 중국 정부는 “모듈화” 기업에서 벗어나 미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가 주도 정책을 펼쳤다. 이는 국가 보조금 지급, 저렴한 이자율 적용 등 반(反) 시장적으로 보이는 정책을 수반한다.


둘째, 중국 정부는 AI 훈련에 특화된 정책을 실행 중이다. AI 딥러닝에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 확보가 핵심인데, 서구 사회는 개인정보 보호법과 환경규제 등으로 인해 대규모 데이터 수집·활용이 쉽지 않다. 반면 중국은 이런 제약이 훨씬 느슨해 AI 개발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고, 대기오염 규제에서까지 비교적 자유롭다.


셋째, AI와 친환경 산업에 필요한 희토류와 광물 자원이 중국에 풍부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서구는 매장량도 부족하고, 노동 및 환경규제로 인해 희토류 채굴이 쉽지 않다. 하지만 중국은 풍부한 매장량과 느슨한 규제로 세계 대부분의 희토류를 중국 본토에서 채굴한다.


이처럼 중국의 급부상은 여러 요인과 결합되어 있다. 또한 앞서 책 서두에서 언급되었듯이, 중국 개혁은 그 원인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모듈화”로 인한 성장은 서구에 큰 위협이 되지 못했지만, 서구의 ‘중국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와 강경 대응이 중국에게 새로운 위기의식을 심어주었다. 내부적으로 반(反) 자유무역주의자들이 떠오르고, 언론도 연일 중국 기업이 위협이라고 보도한다. 이에 중국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의 과감한 정책과 방향 설정은 이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정부의 태도와 인재 유치

고부가가치 산업에 인재 유입은 필수적이다. 전통적으로 사람은 자유와 자신의 능력에 따른 정당한 대우를 갈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능력 있고 해외에서 인정받는 중국 인재들의 해외 유출이 중국 발전의 한계라고 많이 지적되어 왔다. “제도의 아웃소싱화”로 인해 사유재산권과 어느 정도의 자유가 허용되자, 해외 유학생 출신 중국인들이 대거 귀국했고 이는 초기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시진핑의 등장으로 중국 정부는 예전보다 더욱 억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알리바바 창립자 마윈은 정부 비판 직후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고, 최근 다시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 과정은 정부의 억압적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중국은 능력 있는 인재를 계속 유치할 수 있을까? 현 정부 기조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첫째, 트럼프 행정부는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 유학생 스파이에 대한 우려와 반(反) 이민 정책으로 인해 중국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학업을 마친 뒤 정착할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내부의 반중(反中) 정서 속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은 학업을 마치고 자국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중국 대학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중국의 MIT’라 불리는 칭화대학이나 상하이 자오퉁대학 같은 곳은 중국인들이 더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해주고, 이는 자연스럽게 인재들이 중국 정부나 기업에 기여할 기반을 마련한다. 2024년 QS 세계대학 순위에 따르면 베이징 대학은 12위 칭화 대학은 14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반 논문이 양과 질 또한 미국을 추월했고 또한, 2022년 중국대학 특허 출원 수는 전체의 64.7%로 미국 대학을 앞섰다.


둘째, 자유와 물질적 혜택이 인재 유치의 커다란 동인이긴 하지만, 중국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다른 동기를 부여하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중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긴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중국의 역사는 과거 영광과 서구의 침략에 의한 파괴, 그리고 그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중국인들은 과거의 영광을 다시 세우는 현재 중국의 일원이라는 자긍심 아래, 자유나 물질적 혜택을 어느 정도 희생하면서도 귀국하거나 잔류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상과 집단의식이 없었다면 1990년대 초기 발전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은 ‘모듈화’를 벗어나 더 경쟁력 있는 중국으로 만드는 그 ‘열차’에 올라타고자 하는 동기가, 중국 인재들을 중국에 잡아두고 있다.


부족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처럼 중국은 인재를 자체 수급하고 이를 통한 긍정적 사이클로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위협인가?

대만과 동중국해에서 행해지는 시진핑의 지속적인 군사적 도발은 중국이 분명 서구에 위협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의 약진과 기술적 우위 가능성까지 더해져, 중국의 위협이 단순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화할 수 있다고 꾸준히 경고한다. 그러나 중국이 왜 이렇게 ‘위협적인 국가’가 되었는지 그 원인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중국은 본래 호전적인 나라인가? 아니면 서구의 억압적 정책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발인가?


역사를 해석하는 데에는 유물론적 역사관과 관념론적 역사관이 있다. 유물론적 역사관은 주변환경이 역사를 만든다고 보고, 관념론적 역사관은 인간의 의식·이념·정신이 역사를 추진한다고 본다. 시진핑 같은 인물이 중국에서 권력을 쥐고 서구를 위협하는 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개인의 성향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동시에 서구의 억압적·견제적 움직임이 중국 내부의 위기감과 결합된 결과이기도 하다.


‘국가가 다른 국가를 밟고 올라서야 유지된다’는 제로섬 사고방식은 1·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금 국제정세가 벌이고 있는 제로섬 게임도 인류 안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중국이 실제로 위협인지 아닌지는 어쩌면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서구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민주적이고 세계적 질서를 존중하며 상호 보완적으로 함께 발전할 파트너로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에드워드 스타인펠드가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에서 제시하는 핵심 메시지는, ‘중국은 서구가 걸어온 발전 경로를 답습하고 있으며, 결국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 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의 일당독재 강화와 서구의 적대적 기류는 중국을 오히려 더 강경한 독재 체제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을 전면 배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저자가 주장하듯, 서로 존중하고 상호 보완적 협력을 모색하지 않으면, 제로섬 경쟁은 1, 2차 세계대전 같은 대규모 갈등을 재연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핵심 교훈은 ‘중국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뿐 아니라, ‘서구는 어떤 자세로 중국에 접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이는 곧 우리의 표와 정책 선택으로 이어질 문제이며, 글로벌 미래를 좌우할 핵심 포인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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